바쁜 생활 속에서 한 끼쯤 거르는 것이 일상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결식아동에게 이 한 끼는 소중하고 간절하다.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발달상의 문제부터 심리·정서적인 문제까지, 결식아동은 일상 곳곳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밥을 굶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너머로, 빈 끼니가 아동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다른 시선으로’에서는 결식아동이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며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
◇ 추억이 될 수 없는 아동 결식
부모님 곁에 앉아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꽁보리밥과 김치, 그리고 수돗물로 배를 채웠던 과거를 추억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추억 같은 이야기 어딘가에는 은밀한 한이 배어있다.과거의 가난이 한이 되어 자식의 식탁에는 반찬 하나라도 더 올리려던 부모님처럼,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 이후 배를 곪는 아이가 없도록 꾸준히 노력해왔다. 정부는 결식아동 급식 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아동급식 카드를 발급하고 그 대상을 꾸준히 확대했다. 현재 아동복지법 제35조에 근거하여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 가정 아동의 결식 예방 및 영양 개선을 목표로 아동급식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결식아동’을 검색하면 여러 후원단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명 연예인과 유튜버들도 결식아동을 지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린 배를 움켜쥔 아이들이 있다. 결식은 추억처럼 꺼낼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의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도별 아동급식 지원대상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330,014명의 아동이 급식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아동급식 지원은 ▲기초수급자, 차상위, 한부모 가정 등의 아동 ▲결식이 발견 또는 우려되는 아동 ▲아동복지프로그램 이용 아동 등 결식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 취학 및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330,014명의 아동이 결식 상태에 있거나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수치가 아이들이 ‘어떤’ 식사를 하는지는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굶진 않지만 … 영양 불균형한 식사
결식이라는 것을 보편적으로, 좀 크게 생각해야 하는데.. 끼니를 거른다, 결식아동, 밥을 못 먹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사단법인한국결식아동청소년지원협회 김영태 대표는 한국교원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아동이 끼니를 채우기만 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 '먹는' 행위를 넘어 '무엇을 먹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정책은 끼니를 때우는 데 급급할 뿐, 제대로된 식사에 소홀하다. 2005년 이래 각 지자체는 결식아동 급식사업의 일환으로 급식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가정의 자녀가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못할 경우 급식카드를 통해 학교 바깥에서 급식에 준하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지자체별로 급식카드 지원 단가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1식 지원금액을 최소 4,000원으로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의 급식카드인 ‘꿈나무카드’의 경우 한 끼당 5,000원의 금액이 지원되며 하루에 10,000원으로 사용 금액이 제한된다. 한 끼는 학교 급식으로 지원된다.
2020년 급식카드 단가는 203개의 지자체 평균 5,400원이다. 일반음식점에서 한 끼 식사가 대개 7,000~8,000원인 것을 고려하면 실제 아동이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좁다. 급식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가맹점 또한 극히 제한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최근 전면개편을 통해 급식카드 사용처를 대폭 확대한 경기도는 통계에서 제외) 47,887개 가맹점 중 편의점·제과점이 35,667개로 66%를 차지했고 일반·휴게음식점 10,187개(28%), 마트·반찬가게 1,934개(5.3%)가 뒤를 이었다. 2020년의 결식아동 예산은 2,286억원으로 1,734억원이었던 2019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지만, 아동들이 급식카드를 사용하는 업소 중 3분의 2가 편의점 또는 제과점인 것이다.
급식카드 가맹점에서도 아동이 살 수 있는 품목은 제한적이다.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식사 품목은 주로 컵라면, 삼각김밥 등 인스턴트식품인데, 잦은 간편식 섭취는 영양불균형으로 이어진다. 한국교원대학교 가정교육과 이경원 교수는 “성장기 아동들에게 결식은 신체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식 아동은 일반 아동에 비하여 신장이 작고 체중이 미달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감기나 호흡기 질환, 장염, 설사, 변비와 같은 소화기 장애, 빈혈 등의 문제를 보이기 쉽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장기에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으면 1년에 10cm 클 아이가 5cm밖에 안 크기도 한다. 보통 결식,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못 먹는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이다.”라고 언급했다. 아동은 급속한 신체 성장이 이루어지는 만큼 다양한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식아동은 충분하고 고른 영양소가 담긴 음식을 지원받지 못한 채, 성장과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 아동 결식의 다양한 원인, 다양한 접근이 필요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결식아동을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거르는 아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아동이 끼니를 거르는 이유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서'로만 보인다. 아이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정말 그뿐일까?
김영태 대표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가 봐온 학생들 중 대다수는 급식카드를 편의점에서 사용한다. 다른 일반 음식점에서 사용하기엔 음식의 가격이 높은 것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부끄러움’에서다.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 아동들에게 그들의 빈곤은 ‘낙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낙인을 타인에게 들어내고 싶지 않기에 그들은 오랜 시간 노출되는 식당이 아닌 편의점에서의 간단 식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급식카드로는 보통 편의점을 많이 간다고 보면 된다. 가장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게 편의점이고, 분식점도 있기는 있는데 초등학교 정도면 애들이 부끄럼 없이 상관이 없는데, 고등학생 이상 되면 우리가 말하는 복지카드를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표시하는 하나의 잣대로 볼 수도 있는 거니까. 편의점 같은 데는 크게 눈치를 안 보지 않는가."
또한 아동의 결식은 부모의 이혼 혹은 부모 중 한 명의 신변 이상 등 가족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영태 대표가 최근 들어 알게 된 A 아동의 아버지는 가정에 소홀하여 실질적으로 어머니가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 B 아동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산다. 하지만 B 아동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 실질적으로는 모친 홀로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 둘 모두 모친이 생업 유지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경우 돌봐주는 이가 없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느라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
이처럼 아동의 결식은 단순히 돈이 없어 밥을 굶는 문제가 아니라, 성장기 아동의 예민한 감수성, 가족 위기의 문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그 배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늘려 끼니를 해결해주는 것에 더 나아가 결식의 다양한 배경을 고려하여 아동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다양화 해야 한다. 이경원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며 “아동 결식으로 인한 불안, 우울, 좌절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는 식사 지원을 통해 끼니에 대한 걱정을 해소해주는 것에 더해, 가정에서의 지원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도록 통합적이고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 적절한 식사 보장, 아동의 기본 권리
우리나라 국가별 1인당 명목총소득(GNI)은 2019년 기준 43,430달러다. 1인당 76달러였던 1953년에 비해 약 571배 높다. 결식보다는 과식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권리를 가지며, 존엄성을 가진 주체이다. 하지만 결식아동들은 어느 때보다 골고루 잘 먹어야 할 시기에, 충분한 섭취를 하지 못하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아동들이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경제적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돌봐주는 어른의 부재, 특수한 가정적 배경 등 많은 요소들이 아이들의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지원 제도는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 이들을 지원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결식아동이 지급받는 급식카드에는 가맹점이나 구입 가능한 품목 등 많은 제한이 따른다.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는 수급대상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도 존재한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각지대의 어둠을 비출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단순 보호를 넘어, 아동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과 많은 이들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