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몇 명의 트랜스젠더가 살고 있는지 아는가? ‘모른다.’ 2017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트랜스젠더 수가 390명”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2021년 2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 5182만 4,142명 중 트랜스젠더는 2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추산은 어렵다. 통계에도 없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흐릿한 존재다. ‘다른 시선으로’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흐릿했던 트랜스젠더의 삶을 비춰보고, 이들의 삶이 선명해지기를 바라본다.
◇ 평등한 삶을 살고 싶은 트랜스젠더 예원
트랜스젠더 1.5세대로, 우리나라 트랜스젠더 세계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송예원 씨를 만났다. 예원 씨는 트랜스여성(출생 시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 성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으로서 7살 때 처음 성 정체성을 인지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에 확신을 가졌다.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성 정체성이 드러났기에, 다른 성 소수자들이 홀로 겪는 혼란과 고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변에서도 알아차린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들은 대체로 이해했지만, 지인이나 친구들은 관계를 단절하자는 반응을 가장 많이 보였다. 학창시절에는 쾌활한 성격을 지녀 차별받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비교적 적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남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여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은행이나 병원 등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자리에서의 시선까지, 불편한 기억이 많았다. 13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대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고 시민의 인식도 개방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고, 계속해서 부딪혀야 한다. 앞으로도 트랜스젠더 단체나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 그들 앞에만 존재하는 차별의 벽
예원 씨는 “사람들이 말로는 인정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트랜스젠더에 비해 성 정체성 인지나 커밍아웃의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예원 씨에게도 여전히 혐오와 차별은 존재했다. 연예계에서 종사할 당시 성 정체성 때문에 혼나기도 하고, ‘호모’, ‘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가족들도 ‘가족행사나 모임에 오지 마라’와 같은 말들을 하곤 했다.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받는 상처는 괜찮은데,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컸다.” 예원 씨 주변의 트랜스젠더들도 학창시절 구타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외출을 기피하며 은둔형으로 변하는 사례가 많았다.
용기 내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트랜스젠더들이 차별적 표현이나 대우를 받는 것은 이례적이지 않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591명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족들이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체하거나(56.6%), 내가 원하는 성별 표현을 못하게 하거나(44.0%),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39.4%)’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5년간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 중 37%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주민등록번호에 제시된 성별과 성별 표현이 일치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 남녀가 구분된 직장 내 공간과 관련해서도 26.9%의 응답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나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이에 대응했다고 보고한 사람은 10%도 되지 않았다. 일상생활과 사회 전반에서 트랜스젠더는 차별을 마주하며 오늘을 견뎌내고 있다.
◇ 인식 개선부터 시작하는 차별의 벽 깨기
2020년 초,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고 숙명여대 법학부에 합격한 A씨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합격 보도가 나간 뒤 불거진 학내 반대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제도상의 문제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 때문에 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소수자에게 포용적이지 않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예원 씨는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의 인식부터 먼저 바뀌어야, 법과 제도가 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변화하려면 가장 먼저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는 시선이 자연스럽지 못한 현실은 소수자에게 따뜻한 사회가 되기 힘들게 한다.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참여자 중 65.3%(384명)이 최근 1년 동안 성 정체성 및 성별 표현 때문에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들의 일상에는 늘 차별과 혐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식 개선은 법·제도의 개선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트랜스젠더는 학교, 직장, 병원, 화장실, 언어 등을 비롯한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기 쉽지 않다. 예원 씨는 과거 모델로 활동하던 시기에 혐오 발언을 들었으며,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차별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이다.
차별적 인식의 개선은 학교 현장에서부터 출발한다.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의 성교육은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과 ‘성교육 연수학습과정안’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성애에 대한 개념만 포함하고 있을 뿐,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성인권 교육 실시를 통해 성차별 및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성소수자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 교육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바탕으로, 발달 단계에 알맞게 성인지 감수성을 길러내야 한다.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인식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원 씨는 “성소수자들이 연극, 뮤지컬, 공연 등을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여기에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과 시민들이 교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10명을 인터뷰하여 진행한 전시 “BEYOND THE BINARY”가 열린 바 있다. 박진영 작가는 박에디 활동가와 함께 ‘트랜스퀴어 가시화’를 목적으로, 10명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또한 뮤지컬 ‘킹키부츠’는 드랙퀸 캐릭터를 등장시켜 퀴어(queer) 코드를 통해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다루는 문화예술을 접하며, 가랑비에 옷 젖듯 그들에게 마음을 연다.
제도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의 의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원 씨는 “트랜스젠더들은 외모, 주민등록번호 등의 여러 이유로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린다.”라고 말했다. 인권위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참여자 중 21.5%(119명)이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해 의료기관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일반 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한 526명 중 33.1%는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입원실·탈의실을 이용했다. 이에 강동성심병원은 성소수자 친화적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과에 앨라이(Ally) 의료진을 1명씩 배치하고 성소수자 진료를 전담하게 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성별재지정수술과 함께 성소수자 대상의 호르몬 치료와 정신과 치료도 지원한다. 또한 남녀 이분화된 탈의실 외 젠더 클리닉 등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탈의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이와 같이 트랜스젠더들의 의료권을 보장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의 벽은 지금도 존재한다. 트랜스젠더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함께
“트랜스젠더는 ‘비둘기’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원 씨의 말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 및 행동장애’ 범주에서 삭제했다. 트랜스젠더는 병이 아닌 개인의 한 특성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트랜스젠더와 정신병자에 대한 혐오를 함께 담고 있는 ‘젠신병자'라는 표현을 쓰면서 트랜스젠더를 ‘정신병’ 취급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회 진출에 적극적인 트랜스젠더가 적었던 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별난 것으로 취급하는 시선 때문이었다. 그 시선에 묻혀 트랜스젠더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없었다. 그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그에 따른 법·제도 마련 또한 없었다. 그럼에도 예원 씨, 고 변희수 하사, 숙명여대 합격자 A씨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트랜스젠더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변 하사와 A씨는 사회의 시선으로 인한 희생자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는 늘 존재해왔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보지 않으려고 했던 존재였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을 ‘특별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 주민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그들의 삶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원 씨는 트랜스젠더를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다른’ 시선으로부터이다.
*드랙 : 흔히 ‘여장남자’로 해석. ‘드랙’은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문화에서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에 따라 옷과 행동을 허물과 반대로 표출하는 것.
*앨라이(Ally) : 동맹·연대를 뜻하는 영단어 ally에서 온 말.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소수자들의 인권 개선을 지원하고, 차별에 반대하며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