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엘리베이터 버튼에 향균 필름이 붙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 최근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사회가 늦고 있다는 편집장의 글을 읽고, 필름 뒤에 있던 점자를 발견했다. 지금껏 내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점자였다. ‘다른 시선으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 그래서 잘 알아채지 못했던 미세한 일상들을 소수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 미세한 곳에서부터 인간다운 삶을 침해당하는 그들의 소외와 아픔을 마주하고, 몸으로 느껴보고자 한다. 나아가,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까지 닿고자 한다. ‘다른 시선으로’를 기획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던 시각장애인의 시선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는다.
◇ 시각장애인에 대한 오해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아예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즉 전맹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편견이다. ‘시각장애인’에는 저시력자이거나 시야가 극히 좁은 사람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의 정의는 크게 의학적 정의와 법적 정의로 분류되는데, 의학적 정의는 시력과 시야에 따라 결정되고 법적 정의는 장애인복지법의 기준을 따른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은 ▲나쁜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사람 ▲좋은 눈의 시력이 0.2 이하인 사람 ▲두 눈의 시야가 각각 주시점에서 10도 이하로 남은 사람 ▲두 눈의 시야 2분의 1 이상을 잃은 사람을 말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능숙하게 일을 해내지 못하고 한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사, 바리스타, 사회복지사, 회계직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능력이 아니라 원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다.
◇ 코로나19, 그들에겐 ‘코로나 블랙’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줄어든 외부 활동은 우리에게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어느 장애인은, 우울을 넘어 많은 것이 암담해진 그들의 상황을 ‘코로나 블랙’으로 표현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코로나 블랙을 안겨준 대표적인 예시는 감염병 검사와 자가격리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기본이 되는 비대면 상황은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에 이번 기획에서는 전맹인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이하 ‘이연주 정책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블랙 속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을 직접 들어보았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예를 들어 4인 가족의 경우, 시각장애인이 자가격리 대상이 됐을 때 그 시각장애인은 자가격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도 큰 문제다. 최소한 먹거리 같은 것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옆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라며 “확진 여부 검사를 받으러 간다든지 이런 부분도 굉장히 어려웠다. 확진이 의심되는데 제3자가 같이 가면 감염될 가능성이 생긴다. 국가 기관을 통해 이동해야 하는데, 일부 지방은 그렇게 하는 곳도 있고 대책이 없는 곳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향균 필름은 감염을 막기 위한 용도라는 좋은 취지로 출발했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겐 점자를 가리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점자 위에 향균필름을 붙이다 보니 점자 인지가 떨어진다. 저처럼 점자를 30년 이상 사용한 경우는 조금은 덜하지만 중도 실명하시거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사실상 거의 이용이 불가능하다”라며 어려움을 드러냈다. 건물 1층에서 QR코드를 찍거나 방문자 명부를 작성할 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올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전자출입명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각장애인 서비스 접근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전자출입명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네이버(NAVER) ▲카카오톡(Kakao Talk) ▲패스(Pass) 모두 시각장애인이 QR코드를 생성하고 확인, 사용함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접근성이 낮아 방역수칙에 따라 전자출입명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시각장애인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확진자 관련 정보, 감염병 예방 정보 역시 접근성이 낮아 확인하기가 어렵다.

◇ 당연한 일상은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당연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도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접근성의 문제는 절대 작지 않았다. 지난 7월 17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공공기관 발급 문서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제고 내용이 담긴 점자법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공기관 등이 매년 점자 문서를 요구받은 현황 및 그 제공 실적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등, 공공기관 등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해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제고하려는 것이 점자법 개정법률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최근 한 시각장애인이 재판부에 점자 판결문을 요구했다가 점자 변환 기기의 미비를 이유로 이를 거부당하는 등의 문제가 비일비재하다는 상황의 대책으로서 제안됐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이런 문서들을 대체자료라고 한다. 점자뿐만 아니라 저시력자분들은 일반 문자를 확대해서 보는 게 편하니까 확대문자로 읽거나 아니면 녹음 파일을 요구해서 제공받아야 하는데 사실 잘 안 지켜진다. 벌칙조항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라며 “보통 자료를 파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특히 pdf 파일이나 이미지 파일로 제공된 자료, 쓰기 방지로 암호를 걸어서 주는 한글 파일은 시각장애인이 확인할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보통 시각장애인들은 화면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형식으로 저장된 파일은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가 없다.
기술이 발전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무인 조작 단말기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온라인 쇼핑이나 인터넷 기반 동영상 서비스도 급성장하고 있는데, 그 혜택을 시각장애인들은 누리지 못한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주로 터치형으로 되어있는 무인 조작 단말기를 “그림의 떡”이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도어락이나 가전제품, 키오스크를 예로 들 수 있다. 키오스크의 경우 2019년 5월, 장애인 및 고령자의 접근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보통신기기로 추가됐지만 이는 공공분야에만 적용된다. 음성안내 등의 기능이 없는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주문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웹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8개 표준사업분야 1,000개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성은 평균 53.7점으로, 66.6%에 달하는 웹사이트가 75점 이하 미흡 수준이었다. 웹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넘어간 현재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개발자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지침이 있음에도 따르지 않는다. 버튼 이름도 (스크린 리더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 형식이 아닌) 이미지로 만들어 놓는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떤 게 재생 버튼인지, 정지 버튼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2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안전상비의약품이나 보건용 마스크 등 다빈도로 사용되는 의약품·의약외품에 대해 점자 및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 표시를 의무화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애인의 오용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다. 2019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의약품 총 58개 중 약 27.6%만 점자 표시가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가독성은 주로 점자 규격에 따라 좌우되는데, 점 높이가 낮거나, 점 간격이 과도하게 좁거나 넓은 경우 가독성이 낮다. 의사 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한 일반의약품에 점자 표시가 없거나 그 가독성이 떨어질 경우에 시각장애인은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해 약물 오·남용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집에 상비약을 구매해 놓더라도 형태가 비슷한 약들을 시각장애인이 혼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점자 말고는 없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머리가 아픈데 설사제를 먹는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우려가 있으면 약을 그냥 새로 사는 거다. 저희집에는 연고가 한가득 나왔다. 옆에서 누가 봐줄 사람이 없으면 사고 또 사게 된다. 의약품뿐만이 아니라 식료품이나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종이, 스테인레스 등 재질에 따라 각기 다른 점 높이나 점 간격 등과 같은 점자의 물리적 규격을 표준화하는 ‘한국 점자 규정’을 개정 고시했다. 기존에 편의시설에서만 활용됐던 규격이 이번 규정 개정을 통해 의약품, 음료수 캔 등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점자 표시 의무화라는 넘어야 하는 산은 남아있다. 규격이 표준화되어도 점자를 표시하지 않으면 그 규격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18대부터 이번 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제안됐던 의약품 점자 표시 의무화가 이번에야말로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일상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무감각하게 바라봤던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차별과 소외를 더 찾아내고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교육은 평등을 가르쳤지만, 교육 현장은 평등하지 못했다
EBS 수능 연계교재의 경우, 그 내용의 일부가 수능에 나온다. 입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용 연계교재는 비장애인용 교재보다 몇 달씩 늦게 배포된다. 올해 연계교재 중 하나인 ‘수능 완성’의 경우 비장애인용은 5월 26일부터 배포되었지만, 시각장애인은 약 두 달 뒤인 7월 17일에 점역교재가 배포되어 늦게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은 더욱 심각했다. EBS 연계교재 ‘수능특강’은 보통 1~2월에 발간된다. 작년의 경우 비장애 학생을 위한 수능특강은 1월 21부터 시작하여 2월 내로 전 과목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수능특강은 5월에야 배포되었으며 그마저도 오류가 발견되어 7월에 수정본이 발간되었다. 연계교재 내용의 70%가 수능에 반영되는 것을 고려하면 입시에 커다란 불이익을 받은 것이다.
늦게나마 받아도 교재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이 묻어난다. 도형의 경우 그것이 어떤 도형인지 설명되지 않고 그저 ‘도형’이라고 쓰여있거나 그림의 경우 설명 없이 그저 ‘그림’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았다.
시각장애인용 EBS 교재는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제작하고 배포한다. 문제는 점자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원본 파일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담 국가기관 설립이 필요하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대체자료를 만드는 국가기관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해당 기관에선 학생들의 책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교원들을 위한 지도서 등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학생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교사들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교육현장이 급격하게 변화했지만 시각장애인 교사들에 대한 지원책은 거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제작해야 하지만 장애인 교사들에게 적합한 제작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이자 영어교사인 김헌용(구룡중·35) 씨는 그 사례로 공용 노트북을 꼽았다. 그는 영상 제작에 사용되는 공용 노트북에는 화면을 낭독해주는 센스리더와 같은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 교사들은 사용할 수 없어 자료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장애 교원들을 위한 보조기기 구매 예산의 부족과 교원들 간 원활한 연락 시스템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학교 내에서도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런 문제들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의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라며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기존의 미비했던 시스템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어서다
작은 깡통부터 생명과 직결된 시스템까지, 시각장애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 곳곳에는 소외와 차별이 스며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은 자신의 생활 전반에 관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장애인은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필요한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를 가진다’. 2007년에 제정된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서비스와 정보도 손쉽게 제공받지 못한다. 그들이 당연한 것을 힘겹게 요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의 자원이 부족해서? 부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서? 그 기저에는, 사회의 무감각이 존재한다. 향균 필름이 누군가의 시야를 가린다는 생각에 닿지 못한 것, 이 글을 읽으며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 무릎을 치는 것. 이 무감각에 가려진 장애인의 삶은 아주 작은 편의조차, 커다란 생명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각지대이다. 무감각은 악의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용서되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흔히 ‘배려하는 걸 까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기저에는 동등한 인간에서 장애인을 암암리에 배제하는 태도가 들어있다. 이연주 정책팀장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데, 그거야말로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생활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하겠냐. 그래서 저는 그 자체로, 그냥 봐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우리가 배려해줘야 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평등한 존재이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도”의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꿈꾸며, 한국교원대신문의 발걸음은 계속될 예정이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도구를 소개합니다>
흰지팡이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고 보행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무능과 동정이 아닌,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를 상징한다.
설리번
설리번+는 인공지능 기반 시각보조 음성안내 앱으로, 카메라에서 인식한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해준다. ▲촬영된 이미지에 포함된 문자를 추출해주는 문자인식 ▲사람을 식별하고 나이와 성별을 추측해 주는 얼굴인식 ▲물체를 식별하고 문장을 만들어주는 ‘이미지 묘사’ ▲프레임 안의 색상을 단일, 전체 색상으로 알려주는 색상인식 ▲자동으로 가장 적합한 결과를 알려주는 AI모드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무지점자단말기(점자정보단말기)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서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정보통신기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