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작금의 교육주제는 ‘꿈과 끼’를 키우는 창의 인성교육일 것이다. 매우 좋은 주제로 현재의 우리 상황에 매우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창의와 인성이 같은 덕목이며 함께 키울 수 있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해도 이 덕목들이 너무 자주 바뀌고 있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마트교육이니, steam 교육, 융·복합교육, 그리고 인문교양학 교육이니 하고 쉴새없이 이 쪽 저 쪽으로 방향지시가 날아들고 있었다. 또 그런가하면 학교구조조정이니 효율이니 하면서 이 와는 전혀 다른 철학과 방향으로 대학이 변화될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분야이므로 더딜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과일이나 곡물을 수확하려해도 1년은 걸리며 동물도 스스로 자립하려면 수년이 걸리지만 특히 사람의 경우에는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지성과 기술이 각자 개인에 의하여 만들어지기보다는 그 동안의 사회와 역사를 통하여 축적되어온 것이므로 그 것을 습득하려면 반드시 긴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훈련’에 지대한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현대에서 학교-공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과연 학교 안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교육내용을 어디에서 어떻게 결정하느냐라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주로 교육부의 주도하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도 교육청에서도 일부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교육정책들은 교육정책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들을 충분히 반영하여 결정되겠지만 그 통로와 과정 및 결론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교육부의 수장인 역대 교육부장관의 임기를 살펴보면 최단 2개월부터 최장 2년 남짓이며 평균 1년이 채 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떤 방향을 잡기 시작하다가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다. 역대장관의 교육정책이 그 때 그 때마다 바뀌고,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바뀌는 것이 마치 최근의 스마트폰처럼 ‘최신’ 유행폰이 출시되는 듯하다. 결국 백년대계인 교육 정책을 만들 때에 충분한 준비와 검증을 하지 않았으며 정책전문가와 입안자 그리고 현장이 함께 모여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교육정책은 외부정치에 의하여 오염되기 쉽다. 최근 일본 문부성에서는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임을 주장하는 교과서를 허용하고 아예 가르칠 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다시 대두되고 있는 임나본부설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정치의 우경화에 따른 결과로서 사실이 아닌것을 포퓰리즘 정치에서 이용하는 것이며 과연 우리에게도 그러한 점이 없는것인지 타산지석으로 삼아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교육정책은 유행에 따라 흘러가거나 어느 한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전문가뿐 아니라, 현장교육가 그리고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함께 모여 만들어내는 백년대계로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계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우리 학교에서는 이러한 점을 직시하여 유행을 타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면에 더 비중을 두고 운영해야 할 것이다. 우선 눈앞의 유행이나 사조를 쫓다보면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깊은 우물을 파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을 지고 갈것이 아니다. 교육은 유행이 아니며 더군다나 사람을 키우는 일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근본과 필수에 매달려야 한다. 우리나라와 사회에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도 꼭 필요한 근본적이며 필수적인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 들을 개발 및 적용할 때에 우리 학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며 위상도 느티나무처럼 더욱 견고해지리라 생각된다. 적어도 우리학교의 느티나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우리의 교육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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