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14년 4월 16일, 전국은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알린 속보에 걱정을 하였고, 이 걱정은 하루 이틀 사이에 온 국민을 충격과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희생자의 대다수가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였기에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죄의식은 더욱 컸다. 특히 교육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인 전국의 교육자들에게 있어서 이 참사는 고통, 책임감, 두려움 속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 계기가 되었다.
천재지변을 제외한 모든 대형사고의 메커니즘을 보면 부주의, 과도한 욕심, 실수, 잘못된 대처, 상황의 중대성에 대한 과소평가, 대처 매뉴얼의 무시, 무책임 등이 한 지점, 한 시점에서 동시에 일어나게 될 때 반드시 엄청난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 중 어떤 것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대참사는 그 순간을 요행히 비켜간다고 한다. 우리를 더욱 허탈하게 만든 것은 이러한 사고를 낳게 요소들이 너무도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행스런 행운으로 사고를 비껴가 지금 이 순간에 생존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까닭에 세월호 참사는 정상적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식적인 수용의 한계를 초월한 부끄러운 역사적 사고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뉴스를 장식했던 사고에 책임 있는 사람들과 탐욕스런 종교 집단, 끝없이 재생되는 정치적 이슈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각인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다지 합리적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자각이다. 경제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하여 보기 좋은 외연을 갖추었으니 그 속도 튼실해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냥 허술한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다.
도로에 드러난 씽크홀을 서둘러 메우고 덮는데 급급하면 또 다른 씽크홀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허술한 구멍을 부분적으로 수선한 채 또 다시 우리 사회의 말끔한 겉보기에 열중한다면, 우리는 변화의 기회를 또 한 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수습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많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법으로, 관리감독 행정조직의 변화로, 안전에 대한 교육과정의 변화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장기적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의 고충도 국민들은 잘 알고 있고, 사건의 진상에 대한 철두철미한 규명 요구의 필요성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결국 겉보기의 변화로만 그치지 않고 견고하고 행복한 미래 사회로 가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교육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허술한 속을 바꾸는 것은 책임의식, 자율성, 성실성, 정직성, 공정성, 평등의식, 이타심과 같은 인성교육이다. 이러한 인성이 편리, 효율, 성취와 같은 실용적 가치보다 진정 우선되도록 변화시키는 것은 오로지 우리 교육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