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사당오락(四當五落)이란 말이 있었다. 하루에 4시간 자고 공부를 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만 5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4시간 잔다고 대학에 무조건 합격하는 것은 아닌 것을 잘 알면서도 왠지 5시간 이상 잔 날이면 불안하곤 했다. 지금 보면 사당오락은 대학 합격의 원인을 학생 개인에게 돌린 지극히 무책임한 말이다. 요사이는 사당오락이라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우수생은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무관심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만든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무척이나 가부정적인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계급론과 맞물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 준다.

2020년 10월 한국장학재단이 복수의 국회위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학년도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의 52.4%와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의 51.4%가 고소득층(소득 9, 10구간)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소득 9구간은 월 가구소득이 약 950만 원이며, 10구간은 월 1,425만 원이다. 그리고 이른바 SKY(서울, 고려, 연세대)대학의 2020년 1학기 신입생 중 국가장학금 신청자를 대상으로 소득구분을 나누면 고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55.1%(10구간: 37.9% + 9구간: 17.2%)로 나타났다. 그리고 좀 더 우리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은 SKY 대학 신입생 중 고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7년 41.4%, 2018년 51.4%, 2019년 53.3%, 2020년 55.1%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력이 높은 가정의 자녀가 높은 성적을 얻는 비율이 올라가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학자들은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경제적 자원 자체가 학업성적을 올린다는 주장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많다면 자녀는 사교육에 많이 참여할 것이고,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여러 가지 공부에 필요한 도서 등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소득이 높은 부모는 학력도 높은 경우가 많으며 학력이 높은 부모는 스스로가 자녀의 학업을 도와주는 인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즉 자녀가 공부하는 방법을 모를 때 직접 코치를 해 줄 수 있으며, 최근에 ‘부모 찬스’라는 말이 회자가 되는 것처럼 부모의 인맥을 통해 자녀에게 학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셋째, 소득이 높은 부모는 소위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고 소위 높은 교양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도 높은 교양수준을 대물림하게 된다. 교양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 이상의 문화에 잘 동화되기 때문에 학교에 잘 적응하고 이는 높은 성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의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한 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작은 부분부터 해결하기 위해 정책운영이 필요하다. 이는 대학입학과 대학졸업 정책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입학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배려자전형, 농어촌특별전형과 같은 정책을 통해 부모의 지원이 부족한 자녀들이 대학입학 때 받는 불이익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려는 정책이 존재한다. 또한 기여입학제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대학별 본고사 금지와 같은 대학입학 관련 정책도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연계비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EBS의 수능연계 정책도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정책이다.

다음으로 대학졸업과 관련하여 최근에 실시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의무화’ 정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정책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불리한 자녀들이 지방대학을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그 지역에 위치한 대학의 졸업생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재 법률에 따르면 이 비율을 최대 30%까지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2018년까지 평균적으로 20%의 지방대학졸업자들이 그 지역의 공공기관에 채용되었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관광공사는 강원도에 위치한 대학의 졸업자를 2022년까지 최대 30%까지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뉴스에 따르면 여당에서는 의무채용 비율을 50%(해당지역 대학 졸업생 30% + 다른 지역 대학 졸업생 20%)까지 확대하는 것을 추진할 계획이다. 과연 졸업한 고등학교는 고려하지 않고 졸업한 대학의 위치에 따라서 공공기관 입사에 혜택을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지에 대한 의견이 있다. 한편, 대기업이 주로 수도권지역에 몰려 있는 현실 속에서 지방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에도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도 우리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 나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학생들과 경쟁하여 좋은 학업성적을 얻으라는 것이 과연 공정한 처사인가? 또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것 역시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가 공공기관에 취업하고자 할 때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공정인가? 대학입학과 취업은 현재 우리학교 학생들이 직접 관련된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 초중고 학생들이 조만간 겪을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공정인가? 공정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우리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는 가능한가?”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옆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대답을 하나둘씩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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