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6. 2.

세월호 참사로 인해 유족과 실종자 가족은 물론 나라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 마땅히 작동되었어야 할 국가 기능의 실종과 생명보다 눈앞의 이익에 눈먼 도덕 상실의 상혼에 대한 분노는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은 국가개조 차원의 대응을 천명하였으며 앞으로 안전문제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우리의 고질적인 망각증을 떨치고 이번 사태야말로 근본적인 사회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각성도 어느 때보다 강한 듯하다. 당연한 반응이며 마땅히 그러한 각오와 실천이 지속되어야 할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핵심 원인을 냉철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근본 대책을 수립하여철저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정쟁(政爭)의 또 다른 빌미로 삼는 것은 문제의 본질파악과 해결을 위해 결집해야 할 사회적 에너지를 분산, 소모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재난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난이 일어난 후 이를 사회적 발전의 계기로 삼는 지혜와 역량이 선진사회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정부기관의 전문성 부족과 무능한 대응능력, 비능률적인 안전관리 시스템, 관계기관과 업체간의 유착과 부조리, 규정과 원칙을 경시하는 사회풍토, 무분별한 규제완화, 황금만능의 비도덕적인 상혼 등 정부, 민간부문, 사회풍토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이 광범위하게거론되고 있다.
교육분야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공공부문의 고질적인 문제점중의 하나인 ‘형식주의’는 우리 교육행정과 학교교육에도 존재하며,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도 바로 이 형식주의적인 행태라고 본다. 형식주의란 일을 수행함에 있어 실질보다 형식을, 내용보다 외양을 중시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으며, 적당주의(타협), 가장(simulation), 소극적 실천(무사안일) 등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도 유사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형식주의적 행태란 곧 지켜야 할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다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적당선에서 타협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지키는 것같이 포장하는 것이며, 원칙이 지향하는 취지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소극적 대응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의 업무수행과 조직문화에 관한 연구들, 그리고 학교구성원들은 학교 내의 형식주의적 행태를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다. 교과운영, 교사연수, 장학지도, 시범학교운영, 각종 정책사업, 학교평가,교직원 회의 및 각종 회의운영, 학교행사 등등 많은 사항들과 관련하여 형식적 운영이거론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학교교육을 둘러싼 고질적인 형식주의에 대하여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 원인을 밝히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적, 사회적 노력은 별로 없었다. 더구나 학계에서도 이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의 형식주의를 본격적 주제로 다룬 연구논문은 불과 몇 편에 불과하며 학술대회의 주제가 되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오랜 문제가 지닌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학교의 형식주의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커다란 사태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모르며 밖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학교의 형식주의는 본질적인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피상적, 전시적인 일에 에너지를 소모토록 함으로써 학교구성원의 열정을 식게하고,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성취감을 맛보지 못하고 효능감은 떨어지며, 실제를 속이고 가장행위를 하는데서 오는 죄책감과 자괴감을 맛보게 되고,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행태를 반복적으로 지속하다보면 점차 무감각하게 되어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불감증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본질적인 과업으로 수행하는 곳이다. 학교의 업무체제와 문화는 이러한 학교의 핵심 기능을 최대한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작동하여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만큼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의 형식주의는 이러한 학교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바이러스나 암세포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체 속의 바이러스와 암세포는 자각증세 없이 이미 몸의 일부가 크게 손상되고 기능이 저하된 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 내 형식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학교의 형식주의가 많이 지적되고 있다는 것은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도달하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학교의 형식주의는 개개인의 태도 탓으로 돌릴 수 없다. 형식주의적 행태는 이를 야기하는 객관적인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은 학교조직 내외에 존재하는데, 특히 학교 외부로부터 학교로 향하는 압력이 학교 내의 형식주의적 반응을 초래하게 된다. 학교의 의견과 구체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비현실적인 정책과제의 부과, 충분한 학습시간을 주지 않는 조급한 과제수행 요구, 일관성과 연속성이 결여된 정책 추진, 본질적인 요소보다 가시적인 외관을 중시하는 평가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결국 학교구성원이 일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을 도출하며, 의미부여의 실패는 곧 형식주의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조건이 된다. 이와 같은 외재적 조건을 시정하지 않는 한 학교 내 형식주의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공무원 임용방식을 개혁하는 일 등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중요한 대응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당장 눈에 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적어도 교육부문에서는 교육행정과 학교체제 속에 번식하고 있는 형식주의라는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퇴치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못한다면 우리 학교의 기능은 점점 더 저하되고 학교구성원의 삶은 더욱 척박하고 위태로워질 것이며, 우리가 되뇌는 행복교육은 점점 더 요원해질 것이다. 또한, 언제 세월호와 같은 성격의 사태를 초래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학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소중한 우리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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