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장고’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흰 장화를 신은 것처럼 발 아래쪽이 하얘서 지은 이름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 손바닥에 올라올 만큼 작은 새끼였던 녀석이, 조금만 지나면 대학 신입생 정도 나이가 된다. 동네 길냥이-당시에는 이런 표현은 없었던 것 같고, ‘도둑고양이’라고 불렸지만- 대장의 피가 섞여서 그런지, 여전히 꽤나 건강하다. 고마운 일이다.
한때는 제자리뛰기로 단번에 냉장고나 옷장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가던 녀석이다. 레이저 포인터로 빨간 점을 만들어 주면 어찌나 빨리 쫓아다니는지, 책에서 보던 ‘신출귀몰’이라는 표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음식도 안 가리고 뭐든 잘 먹었다. 지금은 고양이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 리스트가 상식처럼 널리 퍼져 있지만, 그땐 그런 것 잘 몰랐다. 꿀과 알코올만 빼면, 사람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은 아마 거의 다 맛을 봤을 거다. 향과 맛, 텍스쳐 등의 퀄리티를 귀신처럼 눈치채고 먹을지 말지를 정한다고 말하면, 어쩐지 내가 팔불출 소리를 들을 것도 같다. 그래도 사실인 걸 어쩔까. 아직 어릴 때, 장미꽃 향기를 즐겨 맡다가 벌에 쏘인 적도 있었다.
살면서 위기의 순간들은 여러 번 있었다. 몇 해 전에는 베란다 망창에 발톱이 끼어서 옴짝달싹 못 한 채 한참 있었던 사건이 터졌다. 충격이 컸는지 한동안 밥도 잘 못 먹고 거둥도 불편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땐 ‘이제 곧 떠나겠구나’ 싶었다.
곁에서 밥이며 물이며 열심히 챙겨주었다. 사료를 씹지 못하니 캔을 먹였는데, 그것도 잘 안 먹었다. 그나마 먹는 캔을 찾느라 집에 수많은 종류의 캔들이 쌓였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잘 먹는 딱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닭을 곱게 갈아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주식 캔 한 종류. 참치나 오리, 소고기 등 다른 건 안 먹었다. 그 뒤로 몇 년을 그 캔을 쌓아두고 먹이고 있다.
굳이 뭘 그러나 싶을 수도 있다.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겠지 하고. 솔직히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땐 미래를 알 수 없었다. 언제 영영 떠날지 모르는데, 뭐든 먹으면 그걸 먹이고 싶었다. 떠나간 뒤에 ‘그때 그거 하나 더 먹일걸’이라는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그동안 다른 고양이들을 보내고 나서 뼈저리게 느낀 뒤였기에.
그 뒤로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이제는 다행히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그 사건 뒤로 높은 곳은 안 올라가지만, 그래도 이제 의자 정도에는 쉽게 올라간다. 문제는 여전히 수발을 들라 하신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이제 좀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쩔까. 해 줘야지.
그런데 엊그제 캔을 까다가 흠칫했다. 색이 좀 달랐다. 뭐지 싶어 옆면을 보니, 아이고. 참치 맛이었다. 앱을 열어 확인해 보니 내가 주문을 잘못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안 먹는데. 뭘 먹이나 하는 생각과 아직 남은 47개의 캔은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도 일단 깐 캔이니 그릇에 담아 주었다. 조마조마하며.
음? 아구아구 먹는다. 평소보다 더 잘 먹는다. ‘너… 참치 맛 안 먹는 거 아니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종종 떠올리게 되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늘 그런 것은 없다.’
덧없이 사라지거나 변한다. ‘늘 그럴 것이다’라고 여겼던 것들은.
냉장고 위로 사뿐히 뛰어오르던 날렵함도. 입에 손가락으로 넣어주던 캔만 겨우 삼키던 병약함도. 치킨 맛에 대한 고집도.
어디 저 녀석만 그럴까. 내 삶도 그러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수험 생활도, 영원할 것 같았던 대학 시절도,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던 20~30대 시절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늘 그러한 것은 없었다. 슬프기도 안도감이 들기도 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 무척 거부감이 들었던 격언들이 있었다. 그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카르페 디엠”도 있었다. 앞의 말은 허무주의 같았고 뒤의 말은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살다 보니, 이만큼 와닿는 격언도 드물다. 모든 것은 흘러가며,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기쁜 일과 슬픈 일에 무감각해지려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차피 흘러갈 일이니, 그 순간에는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순간에 충실하게. 다만 주의할 것은, 그다음 순간이 되어 이미 흘러가 버렸는데도 지난 순간에 집착하는 일이다.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혹은 영원해야 한다고 믿으며 달라진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함정이 늘 곁에 있다.
연휴가 지나간 다음 날 아침에 쓰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떠올랐을까. 마감이 닥친 여러 가지 일이 날 기다린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도 이제는 중간고사의 기억도 연휴의 추억도 넣어두고, 슬슬 기말고사 준비를 시작할 때인 듯하다. 놀기 딱 좋게 해가 빛나는 5월이기도 하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영원하지 않으며, ‘바로 오늘’의 삶을 즐길 기회도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늘 삶은 딜레마다. 무엇을 택하든, 적당한 밸런스를 찾으며 보람 있게 하루를 보내시기 바란다. 오늘은 지나가 버릴 것이며,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오늘뿐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