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는 완연한 봄을 느껴야 할 시기입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3월을 맞아 새롭게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정리하고 간편한 복장을 꺼내 드는 손길들, 얼어붙었던 흙길을 다듬고 정비하는 사람들, 봄이 오고 있음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봄을 맞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점점 우리가 알던 그 시기에 봄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만 헷갈리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따뜻한 햇살에 꽃봉오리를 맺었다가 갑작스러운 한파에 떨어진 매화, 개나리를 볼 때면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 꽃샘추위라기에는 한파이고 먼지바람이 꽤 차가웠습니다. 느린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큰 불길이 번져 귀중한 산림과 오래된 유산을 삼킨 것도 모자라,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즐거운 소식보다는 안타깝고 애타는 일을 접하는 일이 많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4월입니다.
우리 학교는 그사이 훌륭하게 성장한 졸업생들이 전국의 뛰어난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고 새로운 학생들도 맞이하였습니다. 차갑고 삭막해 보였던 잔디광장이 졸업사진을 찍는 학우들과 가족들로 붐비더니 어느덧 돗자리를 편 학우들도 눈에 띕니다. ‘시간 참 빠르다.’ 혼자 되뇌어 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때로는 아깝고 아쉽지만, 누군가 힘든 시기, 오르막을 걷는 상황이라면 그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단단히 마음먹고 교정에 들어선 우리 학교 학생들, 4년 혹은 그 이상을 선생님이 되기 위한 여정으로 걷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은 시기이지만, 같은 목표를 꿈꾸고 나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으로 늦은 밤까지 학교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워낙 알아서 잘하는 우리 학생들이지만 뭔가 도움이 될 것은 없나 기웃기웃해 봅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 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오르막길’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준비할 때 즐겨듣던 노래인데 어느샌가 수능시험 기간이 되면 라디오의 신청곡으로 자주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들으면 우울해지고 힘이 빠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을 때는 ‘약 올리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사에 나오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을 기다리며 지금처럼 새로운 시작을 계획할 때 들으면 조금 힘이 날 것입니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그릿’이라는 개념을 연구하면서 단기적인 능력보다는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결국 성공을 이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명문 군사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입학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을 추적했을 때, 뛰어난 학업 성적이나 능력보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오래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얘기한 10,000시간의 법칙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100만 시간 정도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데 물론 실제로 정확히 백만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만,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사라는 꿈 혹은 교육계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이곳에 모였습니다. 무쇠가 달구어지고 정련되어 각기 다른 도구가 되듯 우리는 교육을 위해 쓰임 받는 자로 성장하기 위해 달구어지는 중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날씨처럼 불길이 번져와 생명을 위협하고 먼지바람이 불어와 시야를 가리는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필요하겠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움, 스트레스, 실패, 위기 상황을 겪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많이 회자되었던 개념이지만 이는 단순히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사람들이 삶의 도전이나 위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얼마나 빨리 회복하고 성장하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힘이 될 것입니다.
너무 심오한 ‘척’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봄날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머리를 식히러 마스크를 하고 밖으로 나와보세요. 비교적 따뜻한 햇살과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 나무와 풀의 변해가는 색감을 느끼며 교정을 걷거나 운동장 트랙을 느린 속도로 뛰어보세요. 숨이 차오르면 잠시 쉬다가 다시 뛰고 걷고를 반복해 봅니다. 그리고 조금 늦은 이 봄을 기억하며 올해에는 또 어떠한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질지 즐겁게 배우고 성장해 나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