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초등학교 1학년에 도입되었습니다. 제법 쌀쌀했던 봄이었던 탓에 새 학기의 여운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4월에 찾은 1학년 교실에는 아직 유아 티를 벗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담임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다양합니다. 바른 자세가 어려운 아이, 긴장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 선생님 말씀 한마디마다 질문이 많은 아이, 아직은 제 생각을 크게 말하기 힘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1학년이니까요.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에서 ‘나의 꿈’은 무엇인지를 주제로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생각해 보고 다양한 직업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시간은 친구가 적어서 낸 ‘나의 미래 직업’을 다른 친구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으로 말해요’, TV 예능에도 자주 등장해서 어른들에게도 익숙하고 어린이집,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활동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내미는 카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친구들은 말하지 않고 몸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에 키득거리며 온몸으로 직업을 표현합니다.
“뭘 그리는 것 같으니까, 화가!”
“잘라서 넣고, 휘젓고 국 끓이는 거야? 요리사다.”
“소리를 듣는데 뭘 찔러, 조각가? 아니야 주사구나? 의사!”
아이들이 연거푸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자마자 저마다 이해한 대로 소리칩니다. 정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한 직업의 모습을 몸으로 꼬물거리며 표현한 것이 다른 친구가 보기에 다르게 읽혀도 그것 자체로 즐겁습니다. 정답이 나오면 더 좋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문제를 내는 것,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더 해보고 싶어 합니다. 이어진 활동에서도 김연아 선수의 어린이 시절 사진을 보고 대번에 피겨 스케이팅 모습을 따라 합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아이는 한쪽 다리를 높이 들며 김 선수의 시그니처 동작인 스파이럴을 선보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뚝뚝 떨어진 책상 간격은 여전하지만, 아이들은 부쩍 움직이고 뛰고 싶어 합니다.
쉬는 시간, 4학년들은 줄넘기를 들고 도란도란 강당으로 이동합니다. 쉬는 시간이지만 연달아 줄을 넘어보려고 벌써부터 뛰는 아이들과 한옆에서는 수업 시간이 끝났지만 ‘조금만 더요’를 외치며 공을 차며 노는 학생들도 보입니다. 새삼스레 아이들은 움직이게 하는 것도 어렵지만 멈추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뿐일까요? 중학생, 고등학생, 청람의 대학생들, 모두 움직이고 운동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터, 모꼬지에서 끼를 발산하는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미래의 선생님들이 지닌 각양각색의 재능에 놀라면서 ‘아, 우리 선생님들도 춤추는 것을 좋아하셨지’라고 회상해 봅니다. 문득 정교사 연수나 유소년 스포츠지도사 자격연수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이 운동이나 춤을 배울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하지만 우리는 정작 많이 못 움직이고 춤추는 것을 낯부끄러워해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빠르게 뛰고 공을 높이 던지고 춤을 잘 춰야만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였지요. 서울대학교 최의창 교수님의 표현으로 일명 ‘르까프 스포츠’에는 특정 브랜드로 익숙한 르까프가 들어가는데요, 실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말한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의 머리글자에 프랑스어 정관사 LE를 붙여 지은 이름입니다. 말 그대로 올림픽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 수준의 멋들어진 몸, 움직임이 아니면 뭔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포스트 MZ인 알파 세대의 학생들은 비교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틱○, 쇼○, 인스○ 등에 업로드되는 짧은 영상들을 보면 몸부림에 가까운 춤, 전혀 공중 부양하지 않는 슬릭백(Slickback) 영상도 많습니다. 챌린지답게 ‘도전하고 해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둡니다. 정규 교육은 아니지만 이들의 행보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대로 자기주도적이고 학습자중심의 활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들 역시 교실에서는 매 수업 최소 40분간 칠판을 응시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기초학력이 낮아졌다는 우려 속에 다양한 교과 활동과 체험도 해야 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점차 시간이 갈수록 키와 체격은 커지지만, 몸은 굳어지고 힘은 약해져 갑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움직이고 싶은 몸과 멈추지 않는 마음은 제어 받고 있습니다.
한편 지금처럼 미디어, AI와 에듀테크(Edu-tech)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뇌과학자들은 움직임, 춤에 주목합니다. 인지과학, 생체공학 분야에서는 우리의 뇌에서 시각, 청각, 촉각 외에도 몸의 각 부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각하는 자기수용감각에 주목하였고, 실제로 이러한 원리는 AI 신경망, 머신러닝, 로봇 액추에이터, 움직임 센서 등에 적용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뇌는 춤추고 싶다」의 저자인 신경과학자 줄리아 크리스텐슨과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춤을 배울 때 학습과 기억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분비되고, 춤을 배운 경험을 통해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되어 긍정적인 감정과 의욕을 갖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많은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움직이고자 하는 욕구가 괜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5월 어린이날을 즈음해서 매년 진행되는 유아교육과의 ‘꼬나꼬나’, 초등교육과의 ‘색동제’가 진행되겠지요. 작년에는 얄궂도록 비가 참 많이 와서 애써 준비한 활동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쨍쨍한 날씨에 청주, 강내의 많은 어린이가 삼삼오오 모여 한국교원대의 푸른 잔디광장, 교육박물관, 교양학관, 체육관에서 알차게 마련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무엇보다 즐겁게 뛰놀고 춤추고 움직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움직이고 싶은 몸과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래 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