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모국어를 영어로 사용하지 않는 화자 간의 공용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구촌의 링구아 프랑카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렇게 영어를 사용하는 비원어민 사용자의 수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 수의 약 4배로 추정되며, 전통적으로 앵글로·색슨 언어였던 영어의 정체성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모국어를 가진 비원어민 화자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영어는 이제 다양한 어휘, 발음, 문법이 공존하는 진정한 세계어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위 ‘원어민’ 영어만이 정확하다 혹은 우월하다는 원어민 중심주의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팽배하다. “진짜 미국 영어”라는 영어교육 방송 이름이나 “원어민들만 쓰는 표현”과 같은 제목의 서적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원어민, 특히 미국과 영국의 엘리트 백인 계층의 언어로 여겨지고 학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미국 영어’를 배우고 ‘원어민들만 쓰는 표현’을 학습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학습 방식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이 문제를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려 한다.
첫째, 원어민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영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원어민 영어가 우월하다 혹은 옳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영어에 대한 압박감을 주며, 의사소통의 효율성보다는 ‘원어민’과 같은 발음, ‘완벽한’ 문법에 치중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실제 많은 한국인이 겪고 있는 ‘영어 울렁증’은 영어를 몰라서라기보다는 문법과 표현을 ‘제대로’ 구사하였는지 혹은 내 발음이 얼마나 ‘미국식’인지에 대한 자기 검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기 검열은 Korean English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쉽게 나타난다. “사용해서는 안 되는 콩글리시 표현”, “외국인이 절대 못 알아듣는 표현” 등 한국인이 사용하는 영어가 잘못되었다는 뜻을 내포하는 유튜브 콘텐츠나 블로그 글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어쩌면 더 직관적인 표현인 Eye shopping, 창의적 표현으로 Oxford 영어사전에도 수록된 Skinship, 심지어 영국영어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Air con 모두 우리 한국인이 조심해야 할 콩글리시 표현으로 지적되고 있다. 언어학자 Joseph Sung-Yul Park이 말한 것과 같이, 원어민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팽배하며 이는 “한국인은 영어를 못한다”라는 ‘자기 비하’ 이데올로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둘째, 실제로 영어를 공용어로 의사소통할 때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중요할까? 국제공용어로서의 영어 사용 (English as a Lingua Franca) 연구에 따르면, ‘정확한’ 발음 혹은 ‘정확한’ 문법 사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절한 의사소통 전략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세이다.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가진 비원어민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의사소통할 때는 ‘진짜 미국 영어’를 쓴다고 성공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비원어민들 간의 소통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의사소통 전략이다. 상대방이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는 더 쉬운 표현으로 바꿔서 패러프레이징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못 알아들었을 때는 ‘Pardon me?’, ‘Do you mean …?’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의미협상 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접하는 인도 영어, 싱글리시 등을 단순히 ‘비표준’ 영어로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다양한 영어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자주 접하고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진짜 미국 영어’를 배울 때가 아니라 중국인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인도인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나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패러프레이징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혹시 우리는 지나친 원어민 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정말 영어학습에 필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을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때 ‘진짜 미국 영어’를 구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한다는 말을 대단한 칭찬으로 여긴 적이 있다. 하지만, 세계어로서의 영어에 대해 깨닫고 난 뒤에는 좀 더 당당하게 나만의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영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큰 해방감을 경험하였다. 이제는 원어민 지인이 내 발음을 고쳐줄 때면, 예전이라면 주눅이 들어 몇 번을 연습했을 터인데,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으면 된 거지, 당신이 뭔데 내 영어를 지적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영어는 이제 우리 한국인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언어가 아닌 우리 세계시민이 공유하는 링구아 프랑카로서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만 된다면 당당하게 우리식의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혹여나 영어를 마냥 어렵게 생각했던 독자들이 있다면 생각의 전환만으로 필자와 같은 해방적 경험을 해보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