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경북 상주를 거쳐 문경 대승사에 들리곤 한다. 오래전 문경 대승사 가는 길에 상주 남천 식당에 들러 시래깃국을 먹었다. 그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주인아주머니 두 손에 복숭아를 쥐여 주었다. 조금 후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도 국밥을 드시고 그 위태로운 걸음으로 손수 커피를 뽑아서 주인아주머니에게 건넸다. 그 모습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주인아주머니께 여쭤보았다. 왜 할아버지들이 뭘 갖다주냐고. “아주 오랫동안 이 식당에 드나들어서 그래요.”라고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주는 사람의 얼굴에서도 받는 사람의 얼굴에서도 별 미동은 없는데, 이다지도 자연스러운지. 오래된 사람들의 가만한 멋과 시래깃국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상주 남천식당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행복한 순간들을 '풍경'이란 시어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냈다. 일순간 이 시가 떠오른 이유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행복에 대한 꾸준한 성찰과 따스한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편의 시를 통해 고단한 일상에 지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위로받기도 한다. 어쩌면 시를 읽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 강의실에서 이런 순간을 떠올려 본다. ‘애끊는다어느 선생님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넋두리다. 사람 속에 있는 교사라는 직업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딱딱한 강의실에서 학생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수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교수자와 학생이 통()한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교수자와 학생의 눈빛이 합일하는 그 순간, 강의실 풍경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것을 공명(共鳴)의 순간이라 칭한다. 교수자가 안내하면서 안내받는 일종의 마음 움직임이라 하겠다. 물론 그 순간을 얻지 못해도 할 수 없다. 때로 그것은 미루어 둔 채 끝나기도 한다.

남천식당의 그 순간, 강의실에서 공명의 순간’,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라는 시가 동시에 떠오른 이유가 뭘까? 결국 우리가 사람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모두 와 관련된다. 아름다움이란 특정 대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어떤 순간 마음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일종의 마음 발견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우리 앞에 놓인 교육환경이 녹록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일상은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닌데, 난데없이 그것과 마주친다. 그 순간 울림이 일어난다. 아마도 그 울림 속에는 애끊는 마음과 속이 아린 인연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서 자기 안의 작은 체험들이 겹겹이 쌓여 충만한 체험으로 자리할 때 우리는 주변을 좀 더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까. 바로 그런 순간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게 아닐지. 우리는 지금 각자의 때를 지나고 있다. 이런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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