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로 효과(Silo Effect)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사일로는 본래 곡식이나 사료 등을 저장하는 굴뚝 모양의 창고를 의미한다. 다른 물건과 섞이지 않도록 단일 물건만 보유하는 특징을 갖는다. 조직 차원에서 보면 ‘사일로 효과’가 발생하면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서와 부서, 주체와 주체가 서로 협력하지 않은 채 칸막이 사고 내지는 행동을 하게 되면 조직 이기주의만 심화될 수 있다. 교육청이나 교육부를 보면 이러한 칸막이 문화가 비교적 심한 편이고, 이것이 학교 현장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도 한다.

교육은 전문성을 보장해야 할 소중한 영역이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폐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전문성으로 명명하면서, 폐쇄성을 강화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잘못된 엘리트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교육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넘나들며 배우기”이다. 교과와 교과, 주체와 주체, 온라인과 오프라인, 학교와 지역을 넘어설 수 있는 유연한 배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학교의 일상에서 구현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는 곧 경직된 학교 체제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와 동일하다. 

교육 체제를 한번 성찰해 보자. 먼저 우리는 평생교육과 유·초·중등교육을 분리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평생교육의 한 부분으로 유·초·중등교육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하지만, 평생학습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수능에 ‘올인’하는 인생들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교육의 상상력을 거세하고 있다.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우리의 교육을 재구조화해야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할 수 있고,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다. 

유-초-중-고를 살펴보면, 학생들은 전환 학년을 맞이하게 된다. 예컨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급을 이동하여 학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불안감은 커지게 된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보면 학생들의 자살률이 3월에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학생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질문을 해 보자. 과연 유치원 교사들은 졸업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배웠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최근에 이음교육이라고 해서,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들이 함께 모여 각 학교의 수업과 교육과정을 상호 공유하기도 하고, 공동의 행사를 추진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학기 말에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은 사회적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복지-노동-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예컨대, 근래 들어 의학 대학에 들어가려는 열풍이 매우 커졌는데, 이는 노동 시장의 보상 구조와 직결된다. 노동 시장에서 의사들에 대한 보상이 커지다 보니 입시 인기도 높아졌다. 이처럼 노동 시장의 흐름이 입시와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직 문화는 어떠한가? 교사가 “계란판 속의 계란”처럼 고립된 존재로 학교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쉽게 지치고 소진 현상이 찾아온다. 수업은 나만의 사유재가 아니다. 공유재로 인식하고, 개방과 나눔, 소통, 학습의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수업을 나만의 외로운 작업으로 인식하는가? 아니면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습하며 만들어 가는 공동 실천의 결과물인가?

교장실과 교무실, 행정실과 교무실, 학교와 교육청의 관계는 어떠한가? 서로가 협력하지 않을 때, 관계는 악화되고,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학생-교직원-학부모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른바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으로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할 때, 학교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융합의 시선으로 학교와 교육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우리 교육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융합의 가치가 충만해지면 주제통합수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 교과와 교과 간 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돈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면, 역사, 경제, 지리, 미술, 음악, 과학 등 교과별로 그것을 바라보는 접근법이 다를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나의 연극을 실행할 때, 국어, 사회, 미술, 음악, 체육 과목이 협업한다면 놀라운 수업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이음교육이 활성화된다면 학생들의 새 학기 적응을 도울 수 있다. 공급자 중심의 학교 시설에 사용자의 시선이 결합될 때, 학교 공간의 활용도와 만족도, 행복도는 더욱 높아진다. 전국에 130여 개 가까운 통합 운영교가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만 통합되어 있을 뿐, 화학적인 결합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초등과 중등의 칸막이 문화와 제도, 행정이 매우 공고하기 때문이다. 

융합의 가치를 몸소 익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습 공동체 참여이다.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과 상호작용해야 한다. 아울러, 다른 분야를 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학습 공동체(동아리)에 참여해 보라. 구성원 각자가 가진 강점을 보면서 서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누구는 이론에, 누구는 실천에, 누구는 에듀테크에 강하다. 서로가 가진 강점을 극대화할 때, 학교는 살아나게 된다. 주체 간 융합도 필요하다. 한 학기 내지는 1년이 끝나고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함께 모여서 학교 평가를 자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우리 학교의 강점과 약점, 요구, 개선점을 찾아서 논의해야 한다. 교육 분야 내지는 전공 분야 중심의 책 읽기에서 때로는 벗어나 다른 분야를 접할 필요가 있다. 다른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혁신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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