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가 현대인의 여가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인기 직종 목록에 크리에이터가 들어오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자 언어로 쓰인 텍스트 이외에 음성, 문자, 영상 등이 혼합된 복합 매체 텍스트가 읽기, 쓰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외국의 자국어 교육과정에는 읽기’, ‘쓰기라는 용어 이외에 보기’, ‘만들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기호로 구성된 텍스트는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만드는 대상이다. 디지털 문식성, 즉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텍스트를 보고 만드는 능력이 미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은 자명하다.

영상 미디어(텔레비전, 비디오)의 발달로 인해 지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면, 네트워크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지식의 민주화가 가능해졌다. 네트워크 미디어를 통한 지식의 생산자는 소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용자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분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지식의 민주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식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네트워크 미디어의 이용자들이 능동적인 위치에서 정보를 생산유통분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교환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문제의식 없이 유행에 편승한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장르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장르는 흔히 문예 양식의 갈래를 나타내는 용어로 알려져 있지만, 수사학적 장르 이론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확장하여 장르를 사회적 요구와 그에 따른 사회적 행위가 전형화된 것으로 정의한다. 장르는 단순히 글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사회적 요구가 발생하는 특정한 맥락에서 사회적 행위가 반복됨에 따라 일종의 사회적 구성물로서 장르가 형성된다. 유튜브를 예로 들면, 한 채널의 동영상들은 하나의 장르를 형성한다. 동영상들은 특정한 소통 방식과 표현 방식을 사용하고 이것은 여러 개의 동영상에서 반복된다. 그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여러 개의 동영상을 소비하면서 장르를 인식하게 된다. 이 장르에는 동영상뿐만 아니라 구독자들이 동영상에 다는 댓글, 그 댓글에 대한 생산자의 응답 등이 포함된다.

수사학적 장르 이론가들은 장르를 교육함에 있어서 장르 인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장르 인식은 상황적 요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그에 반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장르 인식을 어느 정도 갖추었느냐에 따라 상황 내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윤리적인 태도로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행위로서 장르 인식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 장르 인식과 관련된 질문의 예에는 누가 이 장르로 텍스트를 생산하는가?’, ‘이 장르의 독자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어떤 수사학적 호소가 활용되는가?’, ‘어떤 용어의 선택이나 단어의 유형이 일반적인가?’ 등이 있다.

모든 인간 행위의 중심에는 해석의 과정이 있다. 해석의 관점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주체성이라고 부른다. 나는 과연 스스로 선택한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가? 나 스스로의 관점이라고 착각했던 것일 뿐, 실은 다른 누군가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눈뜬장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사회적 행위를 할 때에는 내가 속한 장르는 무엇인가?’, ‘이 장르에서 콘텐츠는 누가 어떤 의도로 생산하는가?’, ‘이 장르의 참여자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이 장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주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 행위를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식의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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