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경기민요 <태평가>의 첫 대목이다. 세상에는 속상한 일이 너무 많으니 짜증이나 화만 내지 말고, 놀기도 하면서 즐겁게 살자는 내용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니나노경기민요 늴리리야와 태평가 따위의 후렴구에 나오는 소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기분 좋을 때, 또는 놀 때 흥겨운 마음으로 붙이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태평가>는 요즘 말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의 인간을 노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간의 본질이 노는 데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기 초부터 공부하지 말자고 이런 말을 꺼낸 것은 결코 아니다.

니나노가락을 떠올렸던 생각의 시작은 어느 코미디언의 이야기에서부터였다. 물론 이 이야기가 진리이지도 않을뿐더러, 일부 사람들에게는 동의되지 못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점이 있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그 코미디언에 따르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스포츠 종목은 마라톤이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마라톤의 세계기록은 2시간 1분 남짓이다. 그러니까, 마라톤 주자는 1등을 하기 위해서 2시간가량 햇빛 아래에서(또는 빗속에서, 또는 눈을 맞으면서) 전력 질주를 한다. 그런가 하면, 케냐에서 일부 어린이들이 물을 길어오기 위해 걸어야 하는 시간 또한 3시간 정도이다. 만일, 무거운 물을 길어오다가 2시간가량 지났을 때 실수로 물을 엎기라도 하면 다시 우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해야 한다. 이야기의 요지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이라는 말이다. 마라톤 주자가 2시간 넘도록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뛰는 것은 누군가가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생존의 투쟁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또 연구를 하는 것 또한 아프리카에서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길어 오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치열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골자는, 짜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화를 내어서 무엇하냐는 말이다. 우리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리더십,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의지, 행복을 꿈꾸는 마음, 어린이를 사랑하는 가슴, 지식을 탐구하려는 호기심... 등 말이다. 마라톤 주자가 마라톤을 자신의 종목으로 선택했던 것 또한 여러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억지로 시켰다면,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42.195 킬로미터의 뜀박질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20223, 우리는 소위 말하는 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다. 2019학년도 이후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피는 목련,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장미...의 향기의 기억이 희미하다. 축제기간 내내 교정을 울리던 우리들의 노랫소리에 관한 기억도 없다. 함께 했던 맛있는 음식의 냄새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이 상황이 짜증난다. 화도 난다. 그런데 우리는 마라톤을 하려고 이 뜀박질을 시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생존과도 관계가 없는 이 고통스러운 뜀박질은 노는 것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상상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는다. 호모 루덴스로서 한판 놀아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태평가>를 부르며 니나노를 흥겹게 불렀듯이 말이다. 한국교원대학교를 선택했던 그 순간, 나에게 노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 보자. 누군가가 마라톤을 선택했듯이, 한국교원대학교를 선택했을 때에는 가슴 뛰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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