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하양, 검정..

울긋불긋 예쁜 색들로 표지가 장식된 책이 두 권 생각난다. 하나는 심리학자 클로드 M. 스틸의 <고정관념은 세상을 어떻게 위협하는가>(Whistling Vivaldi)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학자 에드워드 드 보노의 <생각이 솔솔 여섯 색깔 모자>(Six Thinking Hats)이다. 참고로 스틸의 한국판 책은 표지가 다르다. 원본 표지에 있었던 색깔 동그라미들이 사라지고 검정색 천으로 눈을 가린 양복 입은 어른들이 있다. 아마도 한국적 정서에 맞추어 보다 진지한 표지를 선택한 듯하다. 그런가 하면, 드 보노의 한국판에서는 오히려 원본보다 색깔을 더 크게 강조해서 그렸다.

이들이 색깔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동일하다. 색깔에는 모종의 의미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 보노는 생각의 유형을 색깔과 연관시켰다. 하양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생각, 빨강은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생각, 검정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 노랑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 초록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생각, 마지막으로 파랑은 논리적이고 통제적인 경향의 생각과 연결시켰다.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색깔의 모자를 쓰게 하고, 쓸 때마다 다른 유형의 생각을 해 보게끔 제안한다. 이때, 어떤 색깔이 더 좋고, 어떤 생각이 더 올바른 것은 없다. 각각의 생각은 달라서 장점과 단점을 달리하며 그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

그런가 하면, 똑같이 색깔에 큰 방점을 찍은 스틸의 생각은 다소 각도가 다르다. 각 색깔은 인종이나 젠더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예상하듯이 우리들의 어두운 마음속의 비밀을 폭로하고 있다. 빨강은 원주민, 보라는 동성애자, 갈색은 라틴계, 노랑은 아시아인, 파랑은 남성, 초록은 십대, 검정은 흑인, 핑크는 여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특히 백인의 통념인만큼 우리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부분도 있다. 분명한 것은 편견이 그만큼 우리들의 생활 속 깊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장 따뜻한 달이기도 하지만, 가장 잔인한 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편견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족의 모습은 어떠어떠해야 하고, 가족관계는 어떠어떠해야 하는지 강요받은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으레 가족을 그리라고 하면, 부모님과 손을 잡고 즐겁게 놀이동산을 다니는 것을 상상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별다른 갈등 없는 가정에서 자라 이런저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면 모를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비혼족, 특별한 법적 절차 없이 결혼을 종료하겠다는 졸혼자들이 등장하고, 1인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30%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전형적인 가족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교육계 종사자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만큼 보다 현실적인 가족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리석은 아버지의 요청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심청이가 효녀라고 강조되거나, 늘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놀부를 결국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흥부의 이야기가 당연한 가족의 도리로 강요되어서는 곤란하다.

스틸이 말하는 색깔과 드 보노가 말하는 색깔을 골고루 섞어 보자. 우선, 나는 주로 무슨 색깔의 생각을 하는지 골라 보자. 객관적인 하양, 감정적인 빨강, 논리적인 파랑, 부정적인 까망... 그런 다음, 타인에 대한 생각의 색깔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어린이에 대해서, 부모님에 대해서, 그리고 스승에 대해서 어떤 색깔의 편견을 갖고 있는지 선택해 보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우리가 선택한 색깔이 무엇이 되었든, 그 색깔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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