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이야기는 재미있다. 특히나 상층 계급 내부의 천일야화는 신데렐라 드라마가 왕왕 성공적인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의 천박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는 한다. 군복무 시절 지겹도록 시청해야 했던 종편 채널에서는 김정은이나 국내 상류층의 사촌의 남편의 팔촌까지도 캐낼 듯이 주변 인물 하나하나를 논했다. 그걸 보며 '상류층 전문가'가 된 간부들이 수두룩하다. 미시적인 인간관계에 주목하는 종편의 뉴스들은 합리적인 듯한 설명으로 시청자의 지적·감정적 욕구를 채워줬지만 실상 그 본질은 기만적인 유희에 불과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이야기도 점점 천일야화가 되어간다. 사실 이번 사건이 이토록 주목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최순실 게이트가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릴 적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종교인의 딸에게 의지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니, 금단의 치정극에 상류층 이야기에 그들 사이의 감정선까지 한국 드라마 흥행 요소의 여러 가지를 움켜쥐고 있다. 이런 작품을 다루는 데 일가견 있는 종편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고 그들의 분석을 보며 민주시민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점차 '최순실 전문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무당이 어떻다느니 정유라에게 딸이 있다느니 하등 가치 없는 가십거리들로 자신의 이빨 사이사이를 채우려는 금수들의 모습도 횡행한다.
검찰의 수사가 지지부진 진척이 없다. 최순실의 죄목도 영 탐탁지 않고 청와대 수색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가 더뎌지는 일은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호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두 사람을 향한 분노가 더욱 강해지도록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지배 권력에게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 사이에 최순실 게이트가 흐지부지되면 그것대로 좋고, 두 명의 개인을 향한 분노가 불타오를수록 등잔 밑은 어두워진다. 단, 이번에 잘릴 꼬리는 반인반신 부활의 대의를 품은 임협집단으로 구성된 탓인지 길이가 좀 길어 보이기는 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덩치는 점차 커지고 있다. 동시에 본질이 흐려지기도 쉽다. 보수 언론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곰탕 하나로 사람들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최순실을 감싸기 위해 수많은 공작들이 이어진다는 소식으로 '개인의 잘못'라는 데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한다. 흑막 너머에 수많은 공범이 있으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테지만 그 짐작과는 별개로 이런저런 흙탕물 사이에서 시야가 흐려지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히 발생한다. 정보의 목적이 최순실을 공격하려는 것이라 해도 그 형태가 궁중비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찰나의 유희를 위한 자충수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최순실 게이트’는 2주간 흥행을 마쳤으니 드라마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어떨까. 박근혜는 사퇴를 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이전처럼 권력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에 대한 처우와 더불어 그 다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에서는 으레 차기 대통령 후보를 물색하기 일쑤지만 그것은 이 사회의 변혁을 향한 한 걸음일 뿐 다함께 고심해야 할 미래라기엔 너무나 소박하다. 박근혜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박근혜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근래에 최순실과 관련되어 주변을 떠도는 ‘재미있거나 화가 나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생산적인 고민들을 가려버리기 쉽다.
이렇게 미래를 이야기한다 한들 생각만으로는 나 혼자 젠체하며 자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음은 물론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텅 빈 광장의 펜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광화문 앞에는 십만 명을 웃도는 사람들이 모였고, 지금은 광장으로 향할 때다. 다만 식물 정부를 앞에 두고 전례없는 ‘여유’가 생긴 지금 식물 정부를 단순히 비난하는 데 열정을 소비하기보다 우리가 갈 길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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