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사랑으로 유명한 교사 이상석이 2000년대 중반 부산의 경남공고에서 재직할 당시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수업시간 학생들이 쓴 글과 시, 이상석 선생의 일기가 모여 있다.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해보라니 메신저로 여학생을 모아 혼숙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
밤을 새워 서면으로 남포동으로 돌아다니며 술 마신 걸 이야기하는 아이
선생님이 들어와도 교과서, 연필도 없이 의자에 기대 멍하니 있기만 하는 아이
무기력하고 대책 없이 사악한 아이들의 모습에 이상석 선생은 울화가 치민다. 가르치는 일, 학생을 사랑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 비겁하고, 한심하고 때론 미운 아이들. 그렇지만 도로 불쌍하고 감사한 존재임을 이 선생은 안다.
선생의 사랑은 여기저기로 확장된다. 자기를 썩혀 사회를 지탱할, 이 사회의 거름이 될 아이들이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억울하고 답답한 이상석 선생. 잘난 놈 인생만 글이 되는가? 아이들 인생이 담긴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자기 딸은 교대생이니 특목고니 하는 고모 고모부들/ 나의 차례가 왔다./ 우물쭈물하는 순간 아버지가/ "그놈 고등학교 졸업하고 삼성에 간답니다./ 내 퇴직도 얼마 안 남았다고······."/ 말에 맞추어 빙그레 웃어가며 모범생을 연기했다./ 아버지에게 굴욕적이었을 그 순간이 지나 돌아오는 차 속,/ 기 죽을 거 없다./ "그래, 공부만 해서 돈 많이 벌어지는 기 아니다."/ 대답 없이 MP3를 들으며/ 뒷자석에서 뒤를 돌아 눈으로 그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과 공고 열등의식으로 아팠을 아이들은 마음을 풀어낼 수 있었다. 선생은 이런 시를 목격할 때마다 더 굳게 다짐한다. 아이들이 ‘나는 내 식대로 살아간다’는 자존심을 세울 수 있도록, 글쓰기로 힘을 주겠다며. 그러나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끔은 고민이 깊다. ‘하! 삼성? 노조 만들 기미만 보이면 악착같이 붙어서 박살 내 버리고 만다는 삼성에, 얼씨구! 우리 아이들 하나라도 더 보내야지’ 뿔뿔이 흩어져서 제 밥그릇 부여잡고 발발 떠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어깨 겯고 나아갈 당당한 노동자로 키우는 법, 부자 앞에 주눅 들지 않는 줏대 있는 사람을 만드는 법은 무엇일까. 부정한 권력자에 맞설 줄 아는 결기 하나 쥐어주고자 선생은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이처럼 교사는 계속해서 배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 책의 모든 페이지가 말한다. 나잇대 있는 선생의 낯설고 새로운 그러나 따뜻한 문체 탓에 책을 읽는 내내 온기가 더해가는 것은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