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견 묵살된 기존 ‘낙태죄’에 대한 비판과 폐지 운동 활발

▲ 지난 15일 서울 보신각에서 페미니스트 단체 연합이 주최하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진행됐다.

지난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불법적인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와 여성단체의 잇따른 시위 등에 따라 개정안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여론이 형성됐다. 이를 계기로 여성단체들은 이번 입법안뿐만 아니라 기존 임신중절 관련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의료계, "임신중절 허용한계, 현실 반영해 수정·확대할 필요 있어“
이번 입법 예고안의 내용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8개 항목으로 유형화하고, 이를 행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로 상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유형에 '모자보건법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가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모자 보건법에서 따르면 현재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이마저도 배우자의 동의를 받고 임신 24주일 이내에 이루어진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임신중절에 대한 요구는 법의 협소한 허용한계를 크게 넘어서 불법 임신중절수술이 매년 20만건 이상 이루어지는 추세다. 의료계는 “이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의사의 처벌 수위만 높이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를 내걸고 입법 예고안에 대항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태아의 심각한 장애, 산모가 정신장애를 가졌거나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정상적인 양육이 불가한 경우 등 낙태를 야기하는 다양한 조건을 간과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1973년 만들어진 모자보건법은 일본의 우생학적인 산아제한법을 그대로 모방해왔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경제적인 여건도 낙태의 허용 조건으로 받아들였다"며 "우리나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을 현실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입장에 대해 “여성의 몸을 수단화한다” 비판이 일자, 의료계에서는 “현행법에서 허용하는 임신중절수술은 실시할 것이지만, 이외의 불법적인 수술은 여성들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라며 "사회적인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임신중절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의료계에서 이와 같이 강경한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보건복지부차관은 지난 17일 의료계 대표와의 대담자리를 마련하고 입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한 움직임
여성 단체에서는 '정부의 입법예고안과 기존 임신중절 관련 법안 어디에서도 여성을 위한 고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며 임신중절 현실을 규탄하고 이번 입법 예고안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가 되는 형법 상 ‘낙태죄’를 폐지를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여성의전화 등 73개 단체와 3800여명의 개인은 17일 연대 성명서를 발표하여 이번 입법예고안과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낙태의 본질은 생명보호가 아닌 책임전가에 있다”며 과거 출산억제 정책으로 강제 불임과 강제 낙태를 적극적으로 시행했으나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자 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 정부의 이중 잣대를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 ▲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 마련▲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 제공을 요구했다. 
지난 15일 서울 보신각에서는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등의 주최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진행됐다. ‘검은 시위’는 최근 폴란드에서 임신중절수술금지 강화 법안에 반발한 10만여명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본 시위에서는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이미 있는 생명이나 존중해라'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22일 부산에서도 '부산페미네트워크'의 주최 아래 검은 시위가 진행됐다.
이번 개정안은 의료계 대표와의 대담 이후 부분 수정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안의 입법예고기간은 11월 2일자로 끝나지만, 임신중절 관련 법 전반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 조속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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