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살다보면 비릿한 ‘관제(官製)’ 냄새를 풍기는 문구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네들은 영어 약자를 무척 좋아해 IGT(I am Global Teacher)와 같은 이름을 붙이거나, 유사한 발음을 이용한 이른바 ‘언어유희’를 사랑하여 'Healing? Wheeling!'과 같은 무리수를 두기 일쑤다(전자는 우리학교의 사업 중 하나고, 후자는 3년 전 대동제의 슬로건이었다). 이러한 관제 수사(修辭)는 해당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소름 돋는 부끄러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얼마 있지도 않은 공동체 의식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여기서 더욱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관의 영향력이 남우세스러운 문구를 만드는 데 그친다면 어떻게든 참고 견뎌낼 수 있건만, 실제 사업에 그 무시무시한 힘이 발휘될 때면 아비규환의 현장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도교육과정 하의 사도교육원생들이 대표적인 피해자다. 현재 이들은 새로 고안된 관제 사업 아래에서 피상적인 활동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필자는 사도교육과정을 수료한 지 4년이 지났고, 현재 적용되고 있는 사도교육과정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어느 원생을 붙잡고 물어보든 그 사람이 ‘청람 1인1기’나 ‘M.A.M’과 같은 사업의 무의미함에 적극 동의하리라 확신하기에 이 글을 적을 수 있다. 혹여 이 두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소개해 드리겠다. ‘청람 1인1기’는 사도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재주를 기르도록 하는 사업이다.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이 재주를 길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11주짜리 활동계획서를 작성한 뒤 소감 및 증빙자료를 포트폴리오나 자격증, 확인서 형식으로 제출해야 한다. ‘M.A.M(Mentor & Mentee)’는 2학년과 1학년 학생이 짝을 이루어 함께 식사를 하거나 문화 활동을 하는 등 총 6회의 감정노동을 일삼은 뒤 보고서를 제출하는 행위다. 혹여 학기 초에 식당에서 웬 사람들이 밥 먹다 말고 셀카를 찍고 있다면 식탁까지 관제에 잠식당한 그들을 조용히 추모하도록 하자.
소략한 탓에 세세한 사항까지는 적지 못했지만 이미 숱한 관제 사업에 시달려본 바 있는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질 거라 생각한다. 재주를 증빙하기가 난해한 탓에 ‘청람 1인1기’를 수행하는 가장 쉬운 길은 아예 동아리에 가입하는 일이어서 뭇 1학년 학생들이 반강제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식견이 짧은 필자로서는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취미를 만들어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M.A.M’으로 아무런 개연성 없는 관계인 ‘동번’을 붙잡아다 이런저런 활동을 강제해 보아야 그저 사진 한번 같이 찍는 귀찮음만 불러올 뿐 사도교육과정에서 의도한 “대학생활 전반에 걸친 학습과 성장”이나 “봉사활동의 기반” 따위가 등장할 가능성은 적다. 이외에도 사도교육원은 책을 읽고 독서 토론까지 실시하는 ‘청람 서삼독’이나 리더쉽 교육 프로그램인 ‘TLF(Teacher Leader Facilitator)’ 등을 힘차게 시행하고 있다.
이들 관제 행사가 문제되는 이유는 행사를 수행함으로써 얻어 가는 보람이 주최 측의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실 많은 경우 보람이라는 것이 전무하다고 보아도 큰 탈은 없을 테다. 사도교육원은 원생들을 대상으로 ‘능동적인 전인 교육’을 추구하고자 하지만 그들의 자기계발을 증빙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결국 교육과정의 이수라는 외재적 목적이 궁극적인 목표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결과물만을 요구하던 것이 이제는 세세한 과정까지도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결과물을 쉬이 조작해 제출하니 조작하지 못하도록 과정까지 감시하겠다는 건데, 이는 오히려 원생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번거로움만 가중시켜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사도교육원이 이 나라에서 가장 파릇파릇할 청년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사회의 구수한 진면목을 보여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대학생활 중 굴지의 관제 행사였던 ‘청람벌 걷기 대회’에 사도교육과정 점수를 주며 참가를 독려하기도 했었고, 여러 ‘증빙자료’를 통해 반드시 실제로 수행한 것만을 보고서로 작성할 필요는 없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불과 작년까지도 ‘청람벌 걷기 대회’가 실시되었다는 것인데, 탄생 직후에는 모두가 배를 잡고 비웃던 행위도 꾸준히 하면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다년 간에 걸친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원생들을 대하는 사도교육원의 태도는 명확하다. 그들은 원생들의 자기조절능력에 대한 신뢰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 상태로 전인교육을 실시하려니 피상적인 사업만이 속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발성이 결여된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도리어 원생들의 자기계발 시간을 빼앗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도교육과정과 관련해 종종 “공짜로 먹고 자고 하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이 운위되고는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말은 ‘국내 유일의 전인교육과정’이라는 허울과 함께 사도교육과정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두 기둥 중 하나일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필자는 탁상공론을 펼치는 중이고, 실제 원생들을 대하는 사도교육원으로서는 그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신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실 없는 관제 프로그램에서 탈피해 누가 보아도 가치 있는 교육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도교육원이 지금까지 취하던 노선을 다소 변경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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