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던 4.3이던, 지나간 참상을 더듬는 방법은 많이 존재한다. 영화나 기록 다큐멘터리 등은 화제성과 문제성, 논쟁을 이끌고 다니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가보는 것이나 관련된 강의를 듣는 것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책은, 특히 문학은 현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푸념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에 와서야 많이 읽히는 작가 한강의 책들도 관심을 받기 이전에는 난해함과 폭력성이 짙은 문학으로 평가받는 일이 흔했다. 이러한 중에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뛰어난 이야기 전달과 공감, 상황에의 몰입을 바탕으로 5.18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비주류의 것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은 매 페이지안의 매 순간이 아찔한 기억들로 다가오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마음을 울린 것은 아마도 연극장면(먹물을 뿌리는 롤러로 검게 울어버린 극본에 의한 연극 말이다)이었을 것이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시구를 그대로 재연하는 듯한 무대 위의 외침들이 나의 기억에 그렇게 선명하게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모습들이 그 때만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현실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그래서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한강이라는 작가는 전작들(희랍어 시간, 채식주의자, 검은 사슴 등)에서도 꾸준히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성이나 그로 인한 고통의 해소, 혹은 고통을 끌어안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왔던 작가이다. 일단 작가 특유의 폭력과 고통을 해석하는 문법은 본 소설에서 극한 고통을 주는 현실과 만나 극대화된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작금의 생태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이야기 구성 자체의 힘은 독자들의 공감을 최대치로 이끌어낸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980년 5월의 광주나, 그 이후의 수용소나, 몇 십 년이 흐른 뒤의 사무실이나, 연극이 펼쳐지는 극장의 의자 위에서 느적느적 걸어오는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한 두 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끝날 것 같이 진행되던 초반부와는 달리, 소설은 연작의 구조를 가지고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시간들 속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뽑아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독자들은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5. 18이 하나의 총격으로서 마무리될 역사가 아닌 강물처럼 끊이지 않는 상흔이라는 것을, 모두의 가슴 속에 새겨진 ‘연대하는 상처’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5.18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던지게 만든다. 이에 대한 해답은 독자의 수만큼 갈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서 ‘5.18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도 씻겨나갈 수 없는 문신’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문신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부에,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들 위에 새겨져 강물처럼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이 문학이 가지는 의의는 더욱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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