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아프리카의 고민
아프리카의 관점에서 볼 때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대륙 내의 식민지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용어가 보다 상용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정확히 말해 1956년과 1957년 아프리카의 수단 그리고 가나가 식민주의 세력과의 해방전쟁을 통해 순차적으로 독립을 획득하는 시기이다. 나이지리아 및 케냐 등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제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시기인 1960년대에 들어서면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이미 일반화의 수준을 넘어 유행의 궤적을 밟게 된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에서 ‘포스트콜로니얼’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과거 식민 세력으로부터의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해방, 그것이다. 다시 말해, ‘탈식민화’가 ‘포스트콜로니얼’의 유일무이한 의미이자 존재이유인 것이다. 과거 식민 지배자의 독선과 전횡 및 인종차별을 답습하거나 격세유전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화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20세기 초반 유럽 전역에서 부활하는 히틀러와 나치의 망령들을 보면서 서구 휴머니즘의 위선과 결락을 고발했던 카리브의 에이메 세제르, 그의 뒤를 이어 기왕의 휴머니즘으로는 종말을 향해가는 인간과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고 ‘새로운 휴머니즘’과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강력히 권고했던 프란츠 파농, 적나라한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계기를 아프리카인들의 ‘집단정신의 회복’ 및 ‘문화 투쟁’을 통해 확보하려 했던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예레레 및 기니 비사우의 아밀카르 카브랄에게 ‘포스트콜로니얼’은 ‘탈식민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포스트콜로니얼’이 단순한 의미의 ‘탈식민화’를 넘어서는 보다 복잡하고 다원적인 의미와 문맥 그리고 내포를 가진 용어로 둔갑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운동사적 차원이 보다 강조된 제 3세계 혹은 비서구의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가 담론사적 차원이 보다 강화되는 서구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견지해왔던 실천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민
‘탈식민화’를 작업 전통의 주요한 과제로 삼아왔던 거개의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민은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명확한 실천적 의제가 서구의 담론사로 편입하면서 현상한 바로 이 실천적 가치의 전복에서 기인한다.
지난 300-400여 년에 걸쳐 점철된 아프리카의 식민화는 아프리카인들로 하여금 유럽인들 및 자기 자신들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전통에 대한 혐오와 근대성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전통에 대한 막역한 애정과 근대성에 대한 무조건적 배격이 그것이다. 이 둘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서로 길항하기도 한다.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아프리카와 카리브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종의 아프리카 판 문예부흥 운동인 ‘네그리뛰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를 주도한 세네갈의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와 카리브 지역 마르띠니끄의 시인 에이메 세제르는 ‘검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선언을 프랑스식으로 감행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온갖 고초와 슬픔, 노역, 좌절, 절망, 수렁’ 등을 견뎌낸 흑인 전통의 유구함과 견결함을 초현실주의라는 프랑스식 모더니즘 형식을 통해 토해내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가 배출한 천재적인 시인 라베아리벨로는 바로 이 양가적인 자기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이 양가적인 자기모순의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비추어주는 거울은 바로 식민주의자들의 언어이다.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가설’이라고 명명되는 이 거울은 ‘내 어머니 시코락스가 만드신 이 섬에’ 와서 주인을 몰아내고 지배자 행세를 하려드는 이방인 프로스페로를 극도로 혐오하는 원주민 칼리반이 그의 ‘마법을 배워 그를 몰아내고 마침내 이 섬을 되찾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언어를 배워 그의 일가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데 있다.
기실 아프리카만큼 서구의 근대적 모순이 위악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사미르 아민이 ‘아프리카의 비극은 근대의 모순에서 비롯한다’고 했던 말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노예제도,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이 모두 근대의 모순에서 비롯한 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근대 혹은 근대성과의 대결은 숙명적이다. 근대 및 근대성을 거부하는 작가이건 혹은 수용하는 작가이건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근대는 깊은 고민의 시작이자 끝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대체로 서구식 근대 혹은 근대성과의 일말의 거리감 혹은 긴장감이 공공연한 형태로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