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군대도 안 가잖아! 솔직히 여자들이 남자보다 인생 훨씬 더 편하게 살지 않아?” “요즘 공공장소 가면 여성 전용 공간 같은 것도 있던데. 이거 완전 여자만 우대하는 거잖아.”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 할 때도, 생각해 보면 글씨 예쁘게 쓰는 여자들이 좀 더 유리했잖아. 불공평해. 요즘은 완전 역차별 시대라니까.”
가끔 만나는 남성 친구들과 한데 모여 이야기를 하다 ‘성차별’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나는 가끔 위와 같은 말들을 듣곤 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이 ‘역차별’ 받았던 이야기를 하면 다른 남성 친구들은 ‘맞아, 맞아’하고 공감하기 바쁘다. 남성 역차별 시대.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에 비해 많은 곳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친구들의 이야기에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친구들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여성이 살기 좋은 여성 중심의 사회일까? 안타깝지만, 나의 남성 친구들이 틀렸다. 정답은 ‘아니다’이다. 21살 비장애인 여성인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2016년의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많은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
사회 속에서 여성 차별적인 요소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일들에 “왜?”라는 질문을 하면 된다. 뚱뚱한 남성, 지나치게 마른 남성은 별다른 지적 없이 직장을 다닐 수 있는데, 왜 뚱뚱한(사실 그 기준조차 너무나 주관적인) 여성은 유독 몸매 관리를 하라는 충고(?)를 들으며 직장을 다녀야만 할까? 왜 아무도 남성의 외모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좀 꾸미고 다녀라’는 잔소리를 하는 걸까? 능력 있는 남성이 비싼 차를 산다고 해서 ‘된장남’ 이 되지는 않는데, 왜 능력 있는 여성이 유명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가 되는 걸까? 성인 남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괜찮으면서, 왜 유독 성인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임신했을 때 아이에게 안 좋다’ 며 뜯어말리는 걸까? 여성 혼자서 임신하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유독 담배 피우는 여성에게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걸까? 왜 부모님들은 대게 성폭행의 가해자가 되는 남성이 아닌,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이 밤길을 다니는 것을 제약할까?
이러한 예시들 말고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 슬프게도 여성 차별의 역사는 너무나 길어서 수많은 차별들이 ‘전통’ 혹은 ‘관습’의 이름으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네 살배기 아이처럼, 당연하게만 보였던 모든 관습들에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여성 차별 문제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굉장히 다행스럽고 운이 좋은 일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성별을 이유로 직접적인 차별을 당한 적이 적은 축에 속한다. 또래 친구들에게는 흔히 존재하던 ‘통금 시간’도 내게는 없었다. 또는 여성들만이 들을 수 있는 충고(?)들, 가령 “여자에가 조신하지 못하게!” 와 같은 말들 역시 집안 어른들께 들어본 적이 없다. 나름 성 평등적인 환경에서 자란 내가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어쩌면 누군가는 투정을 부린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과거 모든 백인들이 흑인들을 열등한 존재라고 믿을 때, 흑인들은 계속해서 ‘왜 흑인과 백인은 다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사회에게 던졌다. 백인들의 계속되는 혐오와 탄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한 결과, 그들은 결국 ‘흑인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부터라도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언젠가 여성들은 항상 아름다워야만 하는 사무실의 꽃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