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2011년부터 전주영생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는 국어교육과 03학번 교사입니다. 지금은 첫째 딸아이의 육아를 위해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밥과 빨래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개교 60년 이래 첫 남성육아휴직 교사라는 점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교사입니다.

‘모교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한 글’을 달라는 청탁을 받고, 후배 여러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제 과거이기도 합니다. 책과 씨름하는 것, 무더위와 씨름하는 것, 자기 자신과 씨름하는 것, 무엇하나 쉽지 않지요. 오랜 수험 생활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앞날에 대한 전망도 흐릿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 공부가 나와 맞는가?’라는 데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만듭니다.

어느 웹툰에선가,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노인이 젊은이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젊은이는 ‘00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노인이 답합니다, ‘그것은 계획이라 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꿈은 아니네.’라고 말입니다. 사실, 눈앞에 놓인 당장의 벽을 뛰어넘는 일조차 힘들어진 사회가 되어버렸기에, 젊은이만 잘못되었다고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벽에 집중하는 틈틈이 그 너머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학교 현장은 거칠게 말하면 아비규환의 장입니다. 임용고사 ‘보기’에 가끔 제시되는, 고분고분하고 정중한 대화가 학생 간에 오가는 일은 열에 한 둘이 될까 말까입니다. 하루는, 어떤 학생이 복도에서 하도 욕설을 하며 지나가기에 붙들어 지도하였더니, ‘학창생활 통틀어 이런 지도 받기는 처음이에요’라며 억울해하던 신입생도 있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매일 같이 만나게 되면, 몇 년 전 스스로에게 던졌던 그 질문이 되살아옵니다. ‘이 직장이 나에게 맞는가?’

임용이라는 벽을 넘고 나면, 생활지도의 벽, 업무의 벽, 소통의 벽, 사람의 벽, 수업의 벽 등 온갖 벽들이 겹겹이 나를 둘러쌉니다. 저 역시 지난 5년간, 벽에 갇혀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눈앞의 벽을 부수어 없앨 수 있는가, 이것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대개 마찬가지인지라, 회식 때 만나면 ‘이 벽은 왜 있는 거야!’라는 성토대회가 열립니다.

그러나 저는 요새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었습니다. ‘벽’에 집중하는 사이 스스로를 잃고 만다는 것을요. 5년 간 ‘벽’에만 몰두한 사이, 업무 능력은 좀 나아졌지만 전망 없이 하루를 견디는 샐러리맨이 되고 말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학교’라는 벽에서 몇 개월 떨어져 있다 보니 요새 그 너머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벽 너머의 것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국어 교과와 관련 없는 책들도 읽고, C언어도 자학자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수험생이었을 때도 저는 가끔 이상한 짓을 했습니다. 반사식 천체망원경을 들고 인문관 앞 잔디밭에서 혼자 달을 봤습니다. 그 때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도서관에 가서는 전혀 시험에 나올 리가 없는 소설을 찾아 읽다가 하루를 다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입니다)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느라 오늘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수험서 밖의 것들도 들여다보며 정말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앎을 쌓는 것이 ‘진짜 공부’라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공부하는 습관이 다르므로, ‘몇 시간을 하고 얼마를 쉬어야 진짜 공부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보다는 내 만족감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공부해도 신체에 지장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좀이 쑤셔서 엉덩이를 자주 들어줘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하시든지 간에 가끔씩은 벽 너머의 것을 상상하고 계획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벽만 바라보고 살아 온 사람이, 벽 너머의 것에만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원활하게 대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벽에 쓰인 글자와 지식 전부가 학교 현장에서 유용한 것도 아닙니다.

수험생활을 계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그것에만 몰두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틀에 박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경계해야 합니다. 장병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정훈공보장교로 복무한 뒤, 남고에서 자유분방한 학생들을 대하며 얼마나 괴리감과 절망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돌이켜 보면, 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학생=피교육생=장병’이라는 인식의 틀이 만들어졌던 데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디서 무얼 하든 우린 벽과 마주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각자가 어떤 벽과 마주하고 있는가가, ‘우리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좋은 참조점이 됩니다. ‘시간 내 화물을 날라야 하는 벽’과 마주한 사람이라면 운수업자일 테고, ‘매출을 올려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하는 벽’을 매월 맞닥뜨리는 사람이라면 자영업자일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벽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술도 마시고, 사랑도 하고, 시위도 하고, 산책도 합니다. 벽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벽만 있는 지옥도, 사방이 뚫힌 천국도 아닙니다. 너무 뻔한 말이지요? 뻔한 말로 글을 맺게 되어 송구합니다. 여러분에게 글로 조금이나마 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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