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글감을 고민하 던 중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청출어람(靑出 於藍)’이었다. 교원대에서는 여러 상황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인데다 너무나도 교훈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라서 글 제목으로는 자칫 진부할 법도 한 이 사자성어로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갈거라는 생각을 예전에는 못했 었는데 말이다. 내가 ‘청출어람’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새내기 대학생 시절에 발행된 교원대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 때 솔직히 나는 ‘한국 사람들은 사자 성어로 된 제목을 왜 이리 좋아할까?’라는 생각 을 했었다. 시큰둥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마되 지 않아 도서관에서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 빛보다 더 푸르다’는 설명이 적힌 커다란 현판으 로 다시 만난 ‘청출어람’은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교원대에서의 배움과 경험 이 바탕이 되어 교육에 대한 의미 탐색과 고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싹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나를 가르쳐준 스승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한껏 노력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교사가 되고, 연구를 계속하며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오 는 시간들을 겪는 동안 한참을 잊고 지냈던 청출 어람을 다시 의미있게 떠올리게 된 것은 교사가 될 학부생들과 이미 교사인 대학원생들을 날마 다 강의실에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로 만나게 되 면서부터였다. 푸른 물감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 며 살아가던 때보다 훨씬 큰 책임과 자질이 쪽빛 으로 살게 된 나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무겁 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Parker J.Palmer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The Courage to Teach)’라는 저서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 이다.” 그에 따르면, 자신을 안다는 것은 가르침 의 전제 조건이자 훌륭한 가르침의 필수사항이 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없는 사람이 학 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문을 논한다는 것은 현 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죽은 개념의 덩어리에 대해 떠드는 행위에 불과하다. 교사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기반으로 학생과의
관계를 맺어야 하고, 학문에 관한 해석의 관점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도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통 찰력을 발휘해야 하는 존재이며, 이 과정에서 학 생과 학문을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15년을 교사로 살아온 나는 부끄럽게도 학교를 떠날 즈음에서야 교사 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었 다. 지금은 내 앞의 학생들에게 그러한 부끄러움 을 열심히 감춰가며 강의를 하고 있지만, ‘수업이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교사는 어 떤 존재여야 하는지’ 나 역시 분명히 알지 못한 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이해 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 황에서도 나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청출어 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참으 로 버겁게 느껴진다. 얼마 전, 신입생과 학과 교수의 대면식 자리에 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교원대학교 교수님들은 다른 대학과는 달리 가르친 제자들이 졸업해서 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경험을
하는데요, 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졸업하자 마자 선생님이 되어서 나갈 때 어떤 느낌이 드시 나요?” 그 때 나는 농담으로 “몹시 불안하고 걱정 됩니다”라고 답변하였는데 시간상의 이유로 그 자리가 바로 마무리되는 바람에 답변의 의미를 미처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학생의 질문에 대해 ‘걱정스럽다’고 답한 것은 제자들이 교사로서의 준비가 부족한 채 졸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교사가 대학에서 완성되어 현장으로 나가야 하 는 완제품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아이 들과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쪽빛을 넘어 꾸준히 푸른 빛으로 성장해갈 나의 학생들 을 믿는다. 다만 내가 푸른 빛의 근원이 되어 줄 쪽빛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 학생들과의 이른 헤어짐이 아쉽고 불안할 때 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자들이 끊임없 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댈 수 있는 교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선생 인 내가 먼저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당 연한 책무일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풋내나는 교수로서 많이 부족하며, 내
가 부족하였더라도 여러분들은 쪽빛을 넘어 푸 른 빛으로 성장해달라고, 나는 그렇게 푸른 빛 으로 성장해 갈 나의 제자들을 점점 더 잘 지원 하기 위해 쪽빛으로서 노력하겠노라고 이야기하 고 싶었다.
‘무언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 는 것은 그것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학사상가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의 책을 읽 다가 내 마음에 박힌 글귀이다. 교사이면서도 교 사가 어떤 존재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 교육 행 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교육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입으로만 떠들 뿐 진정 자기 자신의 문제이자 본질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 일 것이다. 일정 기준을 통과하여 교사가 되었고, 교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교사인 것이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교육과 교사의 의미 를 내 자신의 문제로 성찰하고 있기 때문에 교 사일 수 있음을 나의 학생들과 오늘 함께 마음 에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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