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24일 본교 교원문화관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평소부터 한자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필자는 작년 초부터 이 문제에 대한 신문 기사들을 모두 찾아 읽고, 공중파 및 팟캐스트에서 벌어진 토론들도 섭렵하였던 차라, 이 공청회의 객석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찬반 양측의 모든 의견을 경청하였다. 당시 패널들의 발표를 듣고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나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살벌하고 험악하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발언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다행히 이번에 교내 신문의 귀중한 지면을 빌릴 수 있게 되어 이곳에 한자교육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소략히 적는다.

  우선 가장 유감스러웠던 것은 반대파측에 팽배한 과도한 ‘한글 애국주의’였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한국어를 표기하는데 있어서 한글 이외의 문자를 사용하면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고 민족혼(民族魂)이 더럽혀지는 일이라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였다. 나름대로의 애국심에 도취되어 있는 그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로마자를 이용하여 자국어를 표기하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자기 민족이 발명하지 않은 문자로 자국어를 적는다는 사실에 대해 치욕스럽게 여긴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가 없다. 그리고 현대 한국어 문장을 적는 데에는 한글 외에도 아라비아 숫자와 로마자가 부분적으로 사용되는데, 필자는 이로 인해서 우리의 민족혼에 어떠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데에 반일(反日)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자국의 문자에 한자를 섞어 쓰는 나라가 일본밖에 없지 않냐고 하면서, 국내의 국한문혼용론자들은 일제시대 때 일본어 교육을 받아서 일본말 찌꺼기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한다는 것이다. 기왕에 그들이 반일감정을 이용하려고 하니,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년에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인 ‘암살’에서 영화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인물이 바로 김원봉 선생인데, 선생의 호는 ‘약산’이고, 그의 맹우(盟友)인 김두전 선생과 이명건 선생의 호는 각각 ‘약수’ · ‘여성’이다. ‘약산’은 若[같을 약] 山[뫼 산]이고, ‘약수’는 若[같을 약] 水[물 수]이며, ‘여성’은 如[같을 여] 星[별 성]이다. 즉, 일제의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말고 산과 같이, 물과 같이, 별과 같이 절대 변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한글로만 ‘약산’ · ‘약수’ · ‘여성’이라고 써놓으면, 우리는 엄혹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함께 호를 지었던 그분들의 숭고한 결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설령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공교육에서 한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 사람들이 한자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若山 · 若水 · 如星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글 표기만 보고 약초가 많은 산이라던가 동네 약수터나 연상하지 않을런지 모르겠다.
  이어서 한자교육과 중국어 · 일본어 학습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겠다. 우리가 한자를 공부하는 목적은 당연히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더욱 잘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한자를 공부해 두면 큰 ‘덤’을 하나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자문화권 이웃나라 언어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견실한 밑거름이 저절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 ‘∼에 있다’라는 의미인 동사 ‘在(zài)’를 배울 때 한자를 모르는 학생은 서양의 백인들이 중국어를 공부할 때처럼 ‘zài’는 ‘∼에 있다’라는 식으로 기계적인 암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어의 ‘在(zài)’가 우리말의 ‘있을 재(在)’자라는 것을 알고, 이 글자가 바로 ‘재고(在庫)’ · ‘부재중(不在中)’ · ‘주재(駐在)’ · ‘재향군인회(在鄕軍人會)’ · ‘재경동문회(在京同門會)’ 등의 한국어 어휘에 널리 쓰이는 글자라는 것을 아는 학생이라면 해당 글자의 중국어 발음만 익히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급 · 고급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이렇게 개개의 낱글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학생은 어휘력의 폭발적인 증가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어 학습을 통해 이미 상당량의 한자를 익힌 상태에서 대학의 중문과에 진학해서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초급 단계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이미 중국어를 배우고 대학에 진학한 동기들에 비해 조금 뒤처지기는 했었지만, 곧 상황이 역전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언어이든지 기본적인 발음과 문장구조가 어느 정도 마스터가 되면 그 이후에는 다양한 표현과 풍부한 어휘를 얼마나 구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중국어처럼 유럽 제(諸)언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단촐한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는 언어에 있어서는 방대한 어휘의 학습이 더욱이 중요한데, 여기에 한자 지식이 요체(要諦)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일본어의 경우에는 우리말과의 한자 어휘 일치도가 중국어와 우리말 사이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한국어 한자 어휘를 잘 공부해두면 대부분이 일본어 한자 어휘로 직결된다.
  그런데 반대파측에서는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간화자(簡化字)와 우리의 정자체(正字體)가 모양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식 한자 공부가 중국어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힐문(詰問)하였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그들의 지적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나, 실상은 스스로가 한자에 대한 지식이 얕기 그지없다는 것을 여지없이 피로(披露)시켜 버린 것에 불과하다. 주지하듯 현재 중국대륙에서 사용하고 있는 규범한자(規範漢字)는 일부 복잡한 글자의 자형을 간략화시킨 간화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간화자라는 것 역시 전통 한자체를 몇 가지 규칙에 의해서 간략화시킨 것에 불과하여 정자체를 잘 알고 있으면 별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실례로 필자가 대만에서 유학한 9년 동안 대만 사람들이 중국대륙에서 출판된 서적을 보기 위해서 따로 간화자를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그런 경우를 본 적도 없다. (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자체를 사용한다) 그들은 중국대륙에서 나온 간화자가 섞여 인쇄된 책도 ‘그냥’ 본다. 또한 현재 전국 대학의 중어중문학과 및 중국과 관련된 학과에 재직하시는 교수님 중에 40대 후반 이상은 대부분 대만에서 공부하신 분들인데, 이분들이 한국에서 중국대륙의 교재로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간화자를 따로 공부하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정자체를 사용하는 홍콩에서 정규교과과정에 간화자 수업을 넣고자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많은 홍콩시민들이 반대하면서 했던 말이, “번체자(=정자체)를 아는 사람은 지능이 정상이라면 간체자도 자연히 알게 된다. 바보나 따로 수업을 개설해서 간체자를 배울 필요가 있다.(懂繁體字者, 只要智力正常, 自然也懂簡體字。白痴才需要專門開個課, 來學簡體字。)”였으며, 작가 호연청(胡燕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체자 때문에 수업시간을 사용할 바에 차라리 당시(唐詩)를 한수 더 배워라.(爲簡體字花費課時, 不如多學習一首唐詩。)”
  실상은 이와 같은 것이니, 정자체를 잘 익혀두면, 중국대륙에서 사용하는 간화자는 물론 그것보다 간략화의 정도가 적은 일본의 신자체(新字體)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화자가 정자체와 모양이 달라서 우리의 한자 교육이 중국어 학습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저 무지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끝으로 애견가(愛犬家)로서 말하자면, 개도 순종보다는 잡종견이 잔병치레도 덜 하고 튼튼하게 잘 큰다. ‘나라’도 우리말이고 ‘국가’도 우리말이다. 그리고 ‘나라 국(國)’자와 ‘집 가(家)’자를 알면 ‘국가(國家)’라는 한자어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며, ‘노래 가(歌)’자를 쓰는 ‘국가(國歌)’와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자교육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주제로 하는 공청회가 아니고, 한자교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킬 것이냐를 주제로 한 공청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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