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영어라는 언어가 들어와서 현대적인 의미의 영어교육이 시작된 것은 19세기말 경이다. 그 때 관립 영어교육 기관으로 동문학, 육영공원, 영어학교 등이 설립되어 통역관과 영어를 담당하는 인재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어 왕립영어학교였던 육영공원은 신분적인 제약이 없는 근대적 국립영어학교로 전환되어 운영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영어교육은 선교사들이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인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에서도 이루어졌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어를 우선시하는 강압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중등학교에서 외국어로서 꾸준히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해방 후 미군정청에서 교수요목을 만들어 초급중학교에서부터 영어를 외국어로 지정하여 정규교과목으로 일정 시간 할당되어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한국 전쟁과 그 이후 1, 2, 3차 중등 교육과정 시기에서도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70년대 후반 4차, 이후 80년대 말의 5차 교육과정 시기 등을 거치면서 영어교육은 공교육에서 그 틀을 제대로 갖추며 꾸준히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영어교육은 구조주의 언어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였는데, 영어교육의 목표를 좋은 언어 습관 형성으로 보고 쉬운 문법 항목부터 어려운 문법 항목, 쉬운 단어부터 어려운 단어를 순차적으로 배우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며, 발음이나 표현 오류 등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쳐주어야 하고, 동물 실험 결과에 기인하여 적절한 자극과 보상 또는 강화 등을 통해 훈련시키면 언어학습이 제대로 된다는 가정 아래 영어교육이 실시되었다. 영어를 발음, 문법, 어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물론 듣기와 말하기, 쓰기는 소홀히 다루었지만) 등 언어적 단편 요소로 구분하여 분리적으로 다루었는데, 인지적인 면, 정의적인 면에서 보아 인간은 동물과 달라 그 가설대로 되지 않았다. 문제는 중학교 1학년부터 정규과목으로 영어를 배우면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6년, 대학까지 10년을 배우지만 외국인을 만나서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편지 한 통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였다. 교수-학습 방법도 문제였지만 평가 방법도 심각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학교 시험은 물론이려니와 1992년까지 실시되었던 대학입학학력고사의 영어시험도 발음과 강세, 억양 등을 다루는 문항, 문법을 다루는 문항, 어휘를 다루는 문항, 독해를 다루는 문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듣기와 말하기, 쓰기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에 영어 지필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행히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92년 고시된 6차 교육과정에서는 다소 늦었지만 세계적인 영어교육의 흐름에 부응하여 의사소통 능력 신장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구조주의 교육과정의 틀을 벗어나 기능-구조 중심 교육과정으로 전환하여 실생활 중심의 의사소통 기능 표현을 유창하게 사용하고 언어 사용의 정확성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는 영어교육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획기적인 것은 초등학교 정규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1997년 3학년부터 실시되었다. 중등학교에서도 영어 수업시수를 확대하였으며, 고등학교에서는 학습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영어과목을 선택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교수-학습 면에서의 큰 변화는 영어 지식 전달자로서 교사 중심의 수업에서 창의력, 사고력, 언어 사용 능력을 중시하는 학습자 중심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1997년 고시된 7차 교육과정은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위한 영어교육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꾸준히 생활영어 중시와 언어 사용 능력 신장에 초점을 두었으며, 학습자의 수준을 고려한 심화, 보충 수준별 학습을 강조하였다. 이후 2009 개정, 2015 개정 교육과정도 7차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과업 중심, 의사소통 활동 중심, 학습자 자기주도 학습 중심 등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언어교육의 흐름에 뒤지지 않도록 영어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영어 평가 부분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1993년 처음 실시된 수능 영어는 평가 내용 면에서 과거의 언어 요소 분리평가 방식을 벗어나고자 듣기 문항을 포함하고, 문법, 어휘도 다루면서, 읽기 문항 중심으로 구성하였는데, 영어의 통합 기능을 측정하려는 노력이 일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능 영어는 사소한 변화는 있었으나 큰 틀을 유지한 채 현재까지 20여년 넘게 이루어져 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큰 틀을 구성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교육과정, 교과서(교재), 교수-학습, 그리고 평가이다. 판단컨대 우리나라의 국가수준 영어과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최소한 아시아권에서는 선두적인 자리에 올라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학습 면에서도 세계적 추세의 의사소통 중심 접근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Approach)을 기반으로 영어 사용 능력을 제대로 갖춘 우리 교사들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힘입어 멀티미디어적 요소까지 충분히 반영한 다양한 교수 방법으로 실제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한 과업 중심, 개별, 모둠별, 협력 학습, 과정 중심 학습을 학습자를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평가이다. 수능 영어가 듣기와 읽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말하기와 쓰기, 즉 표현 기능에 대해 소홀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생들은 챈트, 노래, 게임, 문화 이해, 실생활과 관련된 의사소통 과업 활동을 바탕으로 적절한 동기와 흥미를 유지하며 중학교 단계까지는 어느 정도 영어교육의 목표와 부합한 교수-학습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영어교육은 파행으로 이루어진다. 수능 준비를 위해 말하기와 쓰기 기능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그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아 당연히 소홀히 다루어진다. 특정 교재의 내용을 지나치게 과하게 반영하는 현재의 수능 영어시험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과 다양하고 질 높은 교과서의 교실 반영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대학입학을 위한 영어시험에서의 변혁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추세의 영어능력 평가 방향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기능에 대해 다양한 기법으로 성공적인 의사소통 수행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통합적인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는 국가영어시험 시스템을 개발하여, 실험하고, 현장에 보급하여 준비시키는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정부에서도 이 시험으로 수능영어를 대체한다고 고시까지 하였는데, 어느 순간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 언어에서 표현 기능인 말하기와 쓰기 능력을 선다형 문항으로 간접적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평가의 기본적인 원리에 크게 어긋난다. 표현 기능에 대한 직접 평가의 실행가능성(practicality), 즉 현실적인 면에서 어려움은 있으나 언제까지 이에 대한 극복을 미룰 수는 없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어시험의 방식을 따르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기술과 능력은 뒤지지 않는다. 토플시험을 주관하는 미국 ETS의 현재 인터넷기반 시험방식(IBT)이 실현되기까지 그 역사가 70년 정도인데, 우리의 기술과 노력으로 7년 정도에 일정 수준의 준비를 갖추었었다. 시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칭하든지 간에 진정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는 제대로 된 영어평가 방법을 개발하여 시행해야만 공교육에서의 영어 교수-학습이 정상화될 것이다. 여전히 사반세기 전의 “영어를 10년 이상 배우고도 외국인과 만나 인사도 못하고 편지 한 장 못 쓴다”라는 말을 우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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