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이 없다. 학부 총학생회장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독특한 정책기조 아래 전국 국립대에서는 총장 없이 학교를 꾸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그 와중에 총학생회장까지 없는 학교는 희귀하리라 생각한다. 직선제로 뽑지 말고 간선제로 뽑으라는 교육부의 닦달에 우리 전(前) 총장님께서 개교 이래 최초로 전교교수회의를 폐회까지 해가며 간선제를 지켜내셨는데, 교육부는 이제 그 간선제로 뽑은 총장마저 싫다고 한다. 이유도 알 수 없다. 아마 교육부도 정확히는 모를 테다. 어찌 최고 존엄의 속마음을 짐짓 가늠할 수 있겠는가.
종교를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없듯, 총장의 부재는 이미 논리적 범주를 벗어난 일이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의 부재는 다분히도 인간적인 문제여서 더욱 마음이 쓰라리다. 일견 이번 제29대 ‘새싹’ 총학생회장단의 사퇴는 그들이 새터 기간 일으킨 회계 문제를 비롯한 각종 파문으로 책임을 통감하여 내린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사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인 문제, 즉 학부생들을 위해 노력한 일이 오히려 그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불러오는 데서 나온 서러움과 서운함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논지는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표의 자리가 기피되고부터 항상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직전 학기에는 실습버스 사업의 추진을 두고 낯 뜨거운 논쟁이 학생총회 자리에서 오간 바 있고, 총학생회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모든 학부생들은 각 학회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학회장직을 떠넘기는 상황에 충분히 회의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본다.
우리가 우리의 대표를 비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자진해서 우리에게 승낙을 구해 그 자리에 앉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큰 이유지만, 대개의 경우 대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국회의원은 무료로 여의도 소재 대형 pc방을 이용할 수 있고, 도지사는 소방서에 자유롭게 전화를 걸 수 있고, 대통령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교원대의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각종 대표들은 경우가 다르다. 물론 그들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사리사욕을 채울 수야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대표직을 노리는 사람은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정기적으로 봉급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학부생과 총학생회장의 관계는 완전한 계약관계로 이어지지 못한 채 총학생회장이 학부생들을 위해 ‘고생’하는 형태로 갈무리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총학생회의 입장에서는 학부생들의 과도한 비판을 들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괜히 더 서럽고 학부생들은 총학생회가 대표로 출마한다는 것 자체에 약간의 고마움을 가져 비판에 조심스럽게 된다. 결국 그 사이에서 적절한 감정선을 타는 일이 요구되는데 이는 결코 일반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못하다. 다만 모두가 이 조그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구태여 거대 사회의 모습을 추종하기보다 우리의 상황에 맞춰 서로 배려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감정선을 배제하고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피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직전 학기 실습버스 문제도 그 탓에 불거졌고, 이번 총학생회장단의 사퇴 건도 비슷한 사례다. 그들은 나름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원대 총학생회와 학부생은 완전한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의 격렬한 비판은 불행하게도 항상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비판이 격해질수록 “총학생회 분들이 고생하시는 건 알겠지만…”으로는 채 감싸지 못하는 서러움이 대표들로부터 새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이 그저 속에 남아있지 못하고 표출되는 순간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데, 이를 그동안 오로지 총학생회의 마음가짐에 기대고 있던 점은 분명 구조적 문제다.
더불어 안타까운 것은 이번 학생총회 당시 일부에서 나온 ‘탄핵’ 운운이, 사실 총학생회장단에게보다 나머지 학부생 전체에게 피해를 준다는 아이러니다. 총학생회장단의 마음고생을 격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총학생회장단은 사퇴하고 나면 그래도 앞으로는 더 고생할 필요가 없다. 그토록 공격적인 사람들을 9개월 더 떠받드느니 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이미 2년간 총학생회의 공석을 겪었던 교원대 학부생들은 또다시 대표가 부재한 상황에 내던져지게 된다. 교원대 총학생회장은 일반적인 대표와 다르다. 사퇴시킨다고 새로 뽑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탄핵이라는 조치가 최고 수위의 징계겠지만, 자조적이게도 일을 더 시키는 편이 한층 강력한 징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총학생회 자체가 부재한 이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로 다가왔다. 인재개발본부에서는 ‘교원임용 및 취업 학습을 위한 스터디 그룹 지원 사업’을 그야말로 인재개발본부답게 발표했다. 학부생 모두에게 돌아가던 복지가 그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거기서 살아남은 극히 일부에게만 지원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재개발본부는 단 한 차례의 간담회, 그것도 간담회라는 것이 늘 그렇듯 “우리는 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겉치레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졸업생에 대한 대책, 대학원생에 대한 대책,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훨씬 많다는 데 대한 대책은 듣지 못했다는 듯 태연했다. ‘새싹’ 총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야 어차피 결과는 똑같았을 거라며 비아냥대겠지만, 하다못해 이 사업에 대한 교섭에 나서달라는 요구라도 할 수 있었을 테다. 지난 일에 만약은 없듯 이제 와 가정을 해보아야 의미는 없을지언정 어쨌든 학부생의 의견을 무시하는 당장의 사업이 발표됐고, 같은 날 우리의 대표 역시 사라졌다.
‘새싹’ 총학생회를 비호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절차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도 횡령으로 의심 받을 만한 정황이 충분했고, 대동제 물품을 미리 구매했다는 답변은 가히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심정적으로는 업무 미숙으로 인한 실수였다고 믿고 싶으나 실수의 정도나 의도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퇴까지 몰아넣은 점, 그렇게 몰아넣은 주체가 우리였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실 자신들의 실수를 사과하고 적절한 징계 절차를 거쳐 보다 나은 총학 활동을 꾸려나가고 싶었을 새싹은 그 누구도 자신을 응원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손님의 감사하다는 말에 힘을 얻는데, 총학생회는 어떠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소위 말하는 것처럼 총학생회를 동정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감정적인 요소가 체제 자체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우리 하나하나는 한 마디 말을 하기에 앞서 이성만을 내세우기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지옥 같은 사회에서 무슨 순진한 생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점이 이 조그마한 교원대가 다른 학교와 다른 장점이라면 장점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