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의 서울은 내 나이만큼 시간을 거슬러 가더라도 닿을 수 없는 과거다. 젊은 나는 그 시절의 풍경을 본 적 없으며, 들을 수 없다.
헌데 어김없이 찾아온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낯설게 찾아온 나이를 한 살 더 꾸역꾸역 먹어가며, 김승옥의 겨울을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십 년이 흘렀지만 우리네 사는 세상에 스미는 추위는 여전히 단단하다.
스물 둘을 맞이하게 된 나의 겨울은 불안하다. ‘미래’에 관한 흐릿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은 한결 처지가 나을 것이다. 내가 가지는 불안감은 오늘에 당면한 것이며 동시에 순전히 내 소유의 것 역시 아니다. 바로 옆의 친구, 후배, 선배들이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전염시키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피어나되 웅크린 모든 젊음이 애써 숨기려하는, 지독한 불안함이다.
우린 뜨거운 입김을 토하며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강인한 ‘리더십’을 갖춘 듯 보이는 사람들의 간사한 기만을 본다. 마땅히 지켜주었어야 하는 사람들을 저버리고 모욕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곁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한편 이 모두가 출신 지역으로, 학교의 이름으로, 성별로, 피부색으로, 나이로 갈가리 찢어지고 서로 헐뜯는 광경을 본다. 이런 아수라장을 즐기는 사람을 본다.
삶의 역겨움과 겨울의 추위는 뒤섞여 우리의 불안감을 더한다. 이곳은 답이 없어, 눈 감고 넘어가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이것만이 심각한 불안 증세의 유일하고 달콤한 진통제다. 어쩌면 김승옥의 겨울에서 오간 이야기처럼, 우리가 나눴던 대화 역시 모두 한낱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불안감은 한층 짙어지면서도, 너와 나는 유대하지 못한다. 뿔뿔이 흩어진 채 내재된 불안은 불신으로, 타인에 대한 공격적인 배타성으로 분출된다. 그래서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에 나는 참 슬펐고, 내가 가진 슬픔에 겁먹었고,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움츠린 또 다른 나, 네가 정말 싫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서울, 1964년 겨울
겨울 거리를 걷다보면 주변이 온통 회색처럼 빛이 바랬다. 감정과 의지가 불안에 희석되어버린 것 같은 암담함. 그리고 다가가기 참으로 벅찬 당신. 우리가 너무 빨리 늙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김승옥의 겨울을 회상하며 버텨온 나의 겨울. 어느덧 그 끄트머리에 놓인 나는 느닷없이 찾아온 어렴풋한 봄에 정신없이 달려들며 서늘한 현기증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