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모든 건 기억 싸움, 학생들도 '기억 교실' 보존하는 배려 배워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2주기와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안산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세월호 참사로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공간인 ‘기억 교실’을 계속 보존할 것이냐, 희생당한 학생의 물건을 정리해 다음 학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냐를 두고 구성원 간 입장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학생 학부모와 교사들로 이루어진 단원고 ‘교육 가족’ 측은 ‘기억 교실’로 인한 우울함·죄책감·억압 등으로 재학생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렵다며 다른 학교와 동일한 학습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유가족 측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대한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며 기억 교실을 안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교실 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3일 광화문 추모광장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의 부모 세 명을 만나 ‘기억 교실’ 존치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에 관한 서명을 받으러 막 안산에서 올라온 때였다.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답답한 마음을 열심히 쏟아낸다며 두 시간 가량 풀어낸 그 속을 인터뷰로 정리하였다.

한국교원대신문 기자(이하 교): ‘기억 교실’을 존치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2-4 박수현 양 어머니(이하 박 양 어머니): 아이들이 19일에 가장 돌아오고 싶은 장소가 교실 아니었겠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꿈을 키웠을 그 곳을 지켜주고 싶다. 또 그 교실은 교육이 변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하다. 지금껏 입시위주의 경쟁 교육을 받아왔고, 제공해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교실을 보고 기억하며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건 ‘기억 싸움’이지 않나. 기억의 장소를 없애려하는 건 역사에서 지우고 싶고, 그만 잊어버리고 싶단 생각이 깔려있는 거라고 본다.
2-4 김범수 군 아버지(이하 김 군 아버지):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그 안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배가 침몰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세월호 이후 제대로 해결된 건,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이제 그만 교실을 돌려주고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한다. 정말 가슴 아픈 부모들인데 사회적인 배려가 없다는 게 억울하고 속상하다.
교: 현재 애도 장소로 마련된 곳으로 안산 합동 분향소와 광화문 분향소가 있다. 이곳들과 ‘기억 교실’은 다른 느낌인가.
김 군 아버지: 그렇다. 아주 다르다. 교실은 아이들이 숨 쉬고 바닥을 밟으며 걸어 다녔던 현장이다. 작은 흔적 하나 간절하고 아까운 마당에 ‘기억 교실’은 너무 소중한 공간이다. 교실 어디 더 손 때 묻은 데 없나 찾고 싶고···.
박 양 어머니: 아주 작은, 책상 위에 희미한 낙서라도 찾으려 한다.
2-7 곽수인 군 아버지(이하 곽 군 아버지): 1학년 때 가정통신문만 발견해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교: ‘학교를 추모 분위기로 만들려 한다’, ‘멀쩡한 교실을 두고 과학실, 교장실 같은 곳에서 공부하란 것이냐’, ‘욕심이 과하다’는 말들도 들린다.
곽 군 아버지: 어느 하나 ‘내가 잘못했소’하는 사람이 없다. 속죄의 가장 기본이 교실 존치에 있다고 본다. ‘기억 교실’을 없애면 사회적으로 속죄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박 양 어머니: 재학생, 신입생의 잘못이 아닌데 불편을 겪어야 해서 사실 참 미안하다. 그러나 세월호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똑같은 교실에 새 학생들을 들이는 것은 변화 없는 현 상황을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 아이들도 사회에 책임지고 관심을 갖는 어른으로 크려면 기억을 지우는 것을 거부하며 ‘기억 교실’을 보존하는 배려를 배워야하지 않을까···.
곽 군 아버지: 희생된 학생들과 그 부모 관점에 서서 교육청이 진작 교실 증축을 계획했어야 한다. 이제껏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아 재학생 부모와 희생자 부모의 갈등이 야기됐고, 희생자 부모에게 교실 정리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김 군 아버지: 흔적이 없으면 기억이 왜곡된다. 세월호라는 참사가 있었고, 그때 생떼 같은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생생히 알려주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기억 교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참사를 목격하지 못한 세대들은 “그런 게 있었어?”하며 잊는다. 가장 와 닿는 증거물을 보지 못하면 참사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다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국민들이 이 사건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고 싶다.

박 양 어머니, 곽 군 아버지: 전체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
박 양 어머니: 위의 힘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싸워줘야 하는데 아직 애도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힘 없는 유가족이 싸워야만 하는 사회구조가 억울하다. 자식 잃은 것도 억울한데, 이게 더 억울하다.
곽 군 아버지: 특별법도 그렇다. 그것도 유가족이 만들자고 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이러저러한 법이 잘못돼서 그렇다. 그것들을 고쳐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책임자는 누구고, 확실히 처벌하겠다’고 하며 먼저 나서 설명해줘도 모자란데···. 참사 당시 현장에서도, 그 이후에도 아무것도 못하는, 말도 안 되는 국가다. 아니 이건 국가가 아니다.
박 양 어머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 ‘당연히’가 우리나라엔 없고 지금도 변한 건 하나도 없다.

교: ‘놀러가다 죽었을 뿐인데 왜 이리 유난이냐’는 의견도 있다.
곽 군 아버지: 우선 수학여행은 놀러가는 게 아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교육청에서 계획한 학사일정이었고, 엄연한 교육의 일부이다. 또 놀러갔다고 해도, 배가 침몰하는데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는 그런 사고는 원래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 보호, 안전 보장이며 그러기 위해선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게 기본이다. 설사 사고가 났더라도 총력을 다 해 인명을 구출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당시에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사고 원인에 대해 자명하게 밝혀내지 못하는 지금의 꼴은 국가가 부재한 모습이다.
박 양 어머니: 단순한 교통사고라도 그 원인을 밝혀주면 된다. 우리나라는 아무 매뉴얼이 업다. 그냥 엉망진창이구나. 물론 구할 의지도 없었지만, 애초에 매뉴얼도 없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나면, 그만큼의 사람이 또다시 죽는 수밖에 없다.

교: 교육청은 교실 정리가 원칙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고, 새 학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억 교실’이 어떻게 될 것 같나.
김 군 아버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힘으로 교실을 치우려 들 것이다. 시민들이 안 도와주면 소용이 없다.
곽 군 아버지: 버텨야지 별 수 없다. 우리 부모들은 정리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한편 재학생들, 입학생들 의사도 물어봐야 한다. 미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층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린다.
곽 군 아버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지금 학생들의 세상이다. 서로 감싸주고 다독여줘야 한다. 정부가 잘못하면 국민은 열심히 묻고, 정부는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답해야 한다. 그렇게 됐을 때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 지금 부모님들께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해라. 부모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다신 없을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김 군 아버지: 지금은 경쟁력을 길러도 설 자리가 없다. 사회 구조, 고용 구조가 그렇다. 한 기업 밑에 하청 업체가 주루룩이고···. 그 밑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한들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당사자라 잘 안다. 30년을 넘게 일을 했어도 잔업에, 야근에 애들 볼 시간이 없었다. 교원대 학생들도 훗날 교사가 되면 학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처음엔 잘 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쉽지 않을 거다. 수학을 100점 맞은 학생에게도 잘했다 하지 말고, 그냥 너는 그렇구나. 기준을 공부에 두지 않도록. 다른 재능이 있는 학생들도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보통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학교 바깥으로도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한편 지난 16일 오후 2시, 단원고 앞 올림픽 기념관에서는 예정됐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하 OT)이 재학생 학부모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기억 교실’을 남겨둬 신입생들이 사용할 8개의 교실이 부족하고, 침체된 분위기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신입생을 받은 단원고와 경기도교육청에 항의의 뜻을 표한 것이다. 이날 ‘교육 가족’은 신입생들에게 “부모님께도 보여드리라”며 ‘기억교실 정리하라, 학습권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나눠주었고, OT 행사장이 아닌 밖으로 통하는 문을 가리키며 집으로 돌아가도록 안내했다.
재학생 부모에 의해 OT가 무산되자 단원고는 ‘신입생 OT는 다음 주에 실시하겠다. 메신저 문자와 홈페이지 게시판을 확인하라’는 공지를 했고, ‘교육 가족’ 측은 신입생 OT를 다시 진행하려는 학교에 “지금 왜 이런 안내를 하느냐”며 항의했다. 학교 측이 신입생들에게 배부하려던 교과서 역시 ‘교육 가족’ 학부모들이 막아 배부되지 못했다.
2시 30분께 신입생들의 방문이 멈추자 ‘교육 가족’은 OT가 예정됐던 강당에서 간략하게 입장을 발표했다. 장기 단원고 운영위원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언론은 희생자만을 대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운을 떼며 “사고 당시를 제외하고 재학생 모들이 공식적으로 호소문이나 성명서를 낸 적이 없었으나 앞으로는 희생자가 중요한 만큼 재학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재학생들 수업도 잘 안 되고 있는데 무턱대고 신입생을 받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재학생이라도 제대로 추스르고, 최소한 지금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며 이날 신입생 OT를 저지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교육감 목이라도 끌고 와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했어야 하는데 교장선생님 말, 교육감 말 믿고 지금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낼 모레면 진급을 하는 2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학교운영위원장으로서 특히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며 재학생 학부모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또 자리의 재학생 학부모들에게 “우리는 다른 거 바라지 않지 않느냐”며 “교육청은 정상적인 학습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된다. 오늘이라도 교실 원상 복귀 해주겠다고 하면 없던 일로 하고, 희생자 추모사업과 진상규명 등 유가족이 직면한 문제를 우리가 발 벗고 나서기로 하자”고 말했다.
이날 OT 현장에 방문한 단원고 신입생 김진호 군은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교실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유가족 분들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상태론 교실 이외에 마땅한 공간이 없으니 빼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의견을 전했다. 또 다른 신입생 김해주 군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 할 수도 있어 걱정이 된다”고 말했고, 단원고에 입학하는 형을 둔 오인원(안산, 16) 군은 “교실을 쓰지 못할 수도 있어서 형이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단원고 ‘교육 가족’ 측은 교육청의 결단을 요구했던 기한을 19일에서 입학식인 다음달 2일 이전으로 미뤘다. 3월 1일까지 교육청이 ‘기억 교실’ 문제의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교육 가족’은 학교의 정문을 폐쇄할 예정이다. “새 학기까지 열흘 남짓 남았는데 희생 학생 가족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막막할 따름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며칠 만에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설득 작업을 멈출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명예졸업 이후 교실을 재학생에게 돌려주겠다’는 게 교육감의 입장이지만 그것이 물리적으로 교실을 빼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물리적 충돌이 있어선 안 된다”며 교실 정리를 강행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