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이미지서 탈피해 영화배우·감독이 된 노인들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노인영화제가 열렸다. ‘서울노인영화제’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일쑤인 노인이 직접 본인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영화에 녹이고 담아내 다른 세대에게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다. 2008년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열려 올해 8회째를 맞이한 서울노인영화제는 3일 동안 41개의 단편영화들이 9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경쟁을 벌였다.
영화제 첫날은 단편경쟁 01, 02, 08 섹션의 작품들이 상영됐고, 단편경쟁 01 ‘백점짜리 내 인생’ 섹션의 출품작들은 영화제 개막식인 5시를 앞둔 1시에 서울극장에서 상영됐다.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 중엔 서울 지역 노인복지센터에서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어머니가 출품한 작품을 보기 위해 중년의 딸과 이모가 온 경우도 있었다.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는 모임 ‘뭐라도 학교’의 박은미 파트장은 “‘백점짜리 내 인생’ 섹션의 내용이 어르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며 영화제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시간 상영된 영화는 ▲어느 팔순잔치 이야기 ▲나도 이제 할아버지입니다 ▲백점짜리 내 인생 ▲삼정동 인생사진관 ▲얼씨구 학당의 5개 작품으로 모두 10~15분정도 길이의 단편영화였다. 이날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극장 안에서는 몇 번 웃음이 크게 터졌다. 상영작 ‘백점짜리 내 인생’에서 할머니가 된 주인공이 손녀딸에게 ‘나도 옛날엔 연애했지’하며 너스레를 떨던 장면과 첫날 밤 남편이 아내의 저고리를 풀던 장면이 그것이다.
상영 중 관객들의 웃음을 가장 많이 끌어냈던 ‘백점짜리 내 인생’은 경기도 부천시의 비영리단체인 새롬가족지원센터 식구들의 작품이다, 이곳의 소장 오세향 씨는 “소외 어르신들이 모여 한글 공부를 하고 밥을 먹는 밥상상공동체에서 어느 날 색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이어 “우리 할머니들은 대본 없이 본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냈다”며 “서로가 감독이 되어 제작 중간 중간 사연을 추가하다보니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에서 남편 역을 맡은 하택녀(78·부천) 씨는 “이 나이에 영화도 찍어보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 감사하다”면서도 “이번엔 처음이라 조금 못했는데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며 아쉬움과 함께 포부를 밝혔다. 지난 28일 발표된 심사결과에 따르면 ‘백점짜리 내 인생’은 노인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함께 상영된 ‘어느 팔순잔치 이야기’는 부모의 재산에 얽힌 부모자식 간의 갈등 관계를 다뤘다. 나름의 이유로 자신이 상속을 가장 많이 받을 거라 여겼던 장남과 둘째 아들의 기대와 달리 팔순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자신의 수발을 든 조카딸과 사회복지재단에 재산을 상속하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허탈해 하는 두 아들의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를 제작한 65세 오주영 씨는 “부모자식 사이의 많은 갈등 중에서 돈 문제를 다뤄봤다”며 “이번이 출품 세 번째인데 늘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이라고 모두 무기력하진 않다”며 “특정한 면에 실력과 의욕이 넘치는 노인들이 그것을 발휘하게끔 사회의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사회를 맡은 김조광수 영화감독은 “선배님들이 이처럼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신 것을 보고 지난날의 내 영화는 정말 솔직했는지 돌아보게 됐다”며 소감을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