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흐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이란 뜻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입니다.

기다란 목, 계란형의 길쭉한 얼굴, 텅 빈 눈. 이탈리아 출신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린 인물들의 특징이다. 1900년대부터 사망하기 전인 1920년까지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모딜리아니는 잘생긴 외모 덕에 가난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모델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과 <폴 기욤의 초상> 등이 있다.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그의 마지막 연인, 잔느 에뷔테른이다.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에서 만난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14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보수적인 잔느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한 유대인인 모딜리아니와 딸의 교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잔느와 모딜리아니는 만난 해에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코드다쥐르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둘은 니스로 옮겼고 그곳에서 잔느는 첫 번째 딸을 낳았다. 이때 모딜리아니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당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아기, 소년, 소녀들을 주로 그렸고 주로 따뜻한 색채를 사용했다. 
1919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한 잔느는 겨울에 난로를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해지자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듬해 1월에 외출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모딜리아니는 이웃에 의해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러나 너무 늦었던지 그는 입원한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모딜리아니의 죽음을 들은 잔느는 차갑게 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시체안치실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날 자신의 집 6층에서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각각 따로 안치됐다가 3년 후, 잔느가 모딜리아니의 무덤에 합장됐다. 두 사람은 죽어서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이토록 뜨거운 사랑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통해 후대에도 전해진다.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초상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를 통해 어린 연인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비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공주님과 왕자님의 결말은 아니지만 둘은 그 어느 연인보다 뜨거운 사랑을 했음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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