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과 김성치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질문을 조금 달리해 보자. 대학생은 지식인인가? 지식인이란 단어의 은근한 무게감으로 인해 선뜻 답변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도대체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프랑스어 ‘엥텔렉튀엘(intellectuel)’의 번역어로서 성립됐다. 프랑스에서 이 말이 대중화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다. 19세기 말, 프랑스 군부의 음모에 휘말려 독일군의 간첩으로 몰린 유태인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한 작가, 예술가, 기자, 학자들을 반드레퓌스파들이 ‘앵텔렉튀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만큼 당시 이 말에는 ‘현실과 유리된 이상주의자’ 혹은 ‘선동가’ 정도의 경멸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오늘날 지식인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많이 변화한 듯하다. 지식인들이 향유하는 전문적 지식은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안겨 주었다. 그리하여 최근의 지식인은 사전이 정의하는-'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고품격 인간으로 귀결된다. 이 정의에서 지식인은 일반인과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정한’이란 단어가 주는 모호함은 지식인의 영역이 여러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친다.
즉, 대학생도 얼마든지 지식인일 수 있다. 한 장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엄연한 성인이며, 치열한 입시를 통과하여 고등교육을 받고, 이런저런 음악이나 영화에도 한 마디씩은 꼭 하는 사람들을 어찌 지식과 교양이 미달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면이 있다. 지식인은 사회의 보편적 함의에 대한 반성과 구성원들의 비판과 지지를 통해 성장한다. 이로써 지식인은 당대에 자신의 지혜를 되돌려줄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식인은 사회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얻었으므로, 동시에 ‘일정한’ 수준의 책임감을 더 맡게 되는 것이다. 지식인이 가지는 책임감은, 곧 그의 자격을 의미한다. 이때 책임은 보통 책이나 강연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나누거나, 공동체를 위해 직접 행동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지식인의 이러한 사회 참여는 사회적 대화를 촉발하고, 여러 복잡한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큰 원동력을 공급한다.
대학생이 이와 같은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함과 더불어,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귀찮다는 핑계로 투표를 하지 않고, 싫증이 난단 이유로 정치적 쟁점에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세상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을 자각한다면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개선될 여지가 있다.
결국 대학생이 갖춰야 할 성숙한 자세는 지식인의 권위가 아닌 태도이다. 지식인의 태도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식인은 세상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복잡하게 맞물리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많은 부분 타당하다.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취업난과 학점 경쟁에 소모되고 있다. 하지만 *아탈리의 말대로 지식인은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대학생들이 그들 앞에 닥친 현실을 그저 침묵하며 참아내기보다 한번쯤 반문하고, 이런저런 참견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 참견은 막막해 보이는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피곤한 오늘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만사에 참견하자.
주석?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 유럽은 행의 초대 총재를 지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