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영역(領域)이란 주권이 미치는 공간의 범위를 말하며, 영토·영해·영공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우리의 생활과 관계가 깊은 것은 영토와 영해이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영해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함에도 불굴하고, 우리민족은 역사적으로 바다의 중요성을 간과해 온 것이 사실이다. 1200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바다를 호령하던 장보고는“내가 죽으면 닫힌 바다를 누가 열 것인가?”라며 바다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민족의 앞날을 염려한 바 있다. 또한 조선후기의 박제가는“건국 이래 400년간 단 한척의 외국 선박도 들어온 적이 없는 상태에서 어찌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가?”라며 우리의 폐쇄성을 개탄하였다. 이처럼 우리민족의 바다에 대한 폐쇄성이 세계화 시대인 현재에도 남아있지 않는지와 동해(East Sea)의 국제표준 명칭 고수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사고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나 중동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동해(East Sea)가 어디인지 묻는다면 한국의 동해라고 정확히 답할 수 있을까?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필자의 외국 지인들의 경우에도 동해 명칭과 한국의 상관성을 명확히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동쪽 바다인데 어디에 있느냐가 왜 중요한지 필자에게 반문할 정도였다. 또한, 동해 명칭을 듣고 한국의 동해를 연상하기 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동해를 먼저 연상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서양에서는 동중국해(East China Sea)와 중국식 东海(Donghai)가 더 오래 전부터 서구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이외에도 베트남은 자국의 동쪽 바다를 동해(Biển Dông, East Sea)로 부르고 있고 국제표준 명칭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동해 명칭의 사용은 중국과 베트남의 동해 명칭과 차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동해 명칭을 해외의 전문가와 지도 회사들을 향하여 설득하는 작업은 당사국들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노력으로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한 경우, 외국 출판사들은 Sea of Japan(East Sea)이거나 드물긴 하지만 그 반대 순서인 East Sea(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있다. 이 경우, 외국의 제3자적 시각에서 볼 때 한일 양국이 주장하는 명칭이 비대칭적인 까닭에 동해가 일본해를 부연 설명하는 종속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 이유는 동해와 일본해가 비대칭적이며 등가성(等價性)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해와 동해가 지명의 대칭적 등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한국해(Sea of Korea)나 한국동해(East Sea of Korea)'가 합리적 명칭으로 인정받기 용이해 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부의 공식 국제표준명칭인 동해(East Sea)를 계속 사용해도 될까? 지난 20여 년간 우리 정부와 유관 기관들은 동해 명칭의 세계화를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해외의 정부나 정부기관, 지도제작 관련 기관들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왜 그런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여전히 일본해(Sea of Japan) 단독 명칭을 고수하고 있으며,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 등의 국제기구는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언론이나 지도제작사들은 한국 정부의 요청대로 동해 명칭을 일본해 명칭과 병기해 주기도 하나, 오히려 최근에는 한일 양국 간의 불편하고 민감한 관계를 의식한 듯 한일 양국 사이의 수역 명칭을 별도로 기재하지 않는 양상도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이 최선일까? 비록, 지난 20여 년간 동해명칭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외교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잠시 국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면서 현행 명칭의 문제점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지도에 표기되는 동해 명칭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인을 위한 것인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수역에 대한 지식을 알 필요가 있는 세계인을 위한 것인가? 동해 명칭과 한국과의 상관성은 명확하게 존재하는가? 세계인들은 각자 자신들이 위치하고 있는 상대적인 지점에서 사고할 뿐, 한국인이 생각하는 동해 명칭이나 한국인의 입장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입장에서 특정 지리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편리한 명칭을 제일 좋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인들이 가장 합리적으로 여기고 있는 명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동해 명칭이 일본해 명칭과 병기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북한은 이러한 논의의 구조에서 배제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인가? 제3국에서 볼 때 현재 북한이 쓰고 있는 동해 명칭인 조선동해(East Sea of Korea)와 한국에서 쓰고 있는 동해(East Sea) 명칭은 동일한 바다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다르다면, 향후에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가? 북한이 배제된 상황에서, 동해 명칭이 일본해 명칭과 병기되기를 바라는 우리 정부의 노력은 한일 간의 분쟁적 맥락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해역 명칭에 관한 논의는 한일 간 분쟁의 측면이 아닌 전세계인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추구되는 평화적인 노력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도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관여하고 있는 바다 명칭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 정부도 북한의 참여를 이끌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한이 한 목소리로 이러한 이슈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세계인들이 동의해 줄 수 있는 명칭은 무엇일까? 어떤 명칭이 설득력 있고 지명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도 살릴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인 동해(East Sea) 외에 좀 더 실현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적인 명칭은 없는가? 만약, East Sea of Korea 또는 Sea of Korea가 대안으로 제시될 경우, 지금까지 동해 명칭과 관련해서 추진해 온 우리 정부의 노력이나 국제적인 신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장 수월하게 명칭을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바로 북한 당국과의 공조와 명칭 단일화를 통한 한국동해(East Sea of Korea)의 사용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모색하는 차원에서도 동해에 대한 국제표준 명칭을 재검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한 첫걸음으로 논의해 볼 적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