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심의·기업 후원 거부하며 표현의 자유 지켜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총 4일간 서울청계광장에서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렸다. ‘이 땅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알아’라는 대마 아래 ▲이주·반성폭력 ▲노동·성소수자 ▲국가폭력·반개발 ▲장애·표현의 자유에 관한 주제를 다뤘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우리사회의 인권의식을고취를 갈망하는 인권운동가와 영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영화인들의 믿음이 결합하여 1996년 첫 번째로 개최됐다. 인권영화제는 첫 회부터 「음반 및비디오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사전심의를거부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왔다. 이에 따라 경찰을 앞세워 영화제를 강제 종료시키는 등 공권력의 탄압은 이어졌다. 1997년 제2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제주도 4·3항쟁을 다룬 ‘레드헌트’가 이적표현물로 지목돼 당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었다.
2006년「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제정되고 인권영화제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 영비법 29조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등급을 분류 받지 못한 영화는 상영될 수 없게 됐다. 예외적으로 국가 행정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추천을 받은 영화제에서상영하는 영화는 상영등급분류를 면제받을수 있다. 이에 박현 인권활동가는 “영진위의 추천 기준과 영비법 내부에는 영화에 대한 검열 기제가 있다. 볼 수 있는 영화, 볼수 없는 영화를 국가에서 지정하고 있다”며“인권영화제는 국가 기관의 검열에 반대하여 상영관을 대관하지 못하고 공권력의 과도한 규제 속에 거리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어김없이 국가 기관의 사전심의를 거부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켰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VIP입니다’ 구호 아래 기업의 후원 없이 모든 영화의 무료 상영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모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켜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취지이다. 이에 박현 인권활동가는 “영화감독께도 영화 상영료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모든 재정은 개인 후원을 통해 마련된다. 인권영화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인권영화제는 거리에서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관객과의 접근성이 높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관객과 영화제작자,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다. 영화제에 참석한 민지홍(서울·22)씨는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기회가 흔치 않았다. 인권영화제를 빌어 인권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같다”고 말했다. 장애인 관객의 영화접근권역시 고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17회 초청작은모두 307편. 그 중 장애인 전용관의 상영작은 18편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인권영화제 측에서는 한글 자막, 수화 통역 및 점자 팜플렛을 발간하는 등 장애인의 영화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인권영화제에서는 국내작 17선 해외작 9선 총 26개의 영화를 다뤘다. 개막작으로는 4대강 사업을 다룬 ‘금가이’, 폐막작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다룬 ‘언론의 자유를 팝니다’가 꼽혔다. 제2회 영화제에서 문제가 된 ‘레드헌트’도 다시 상영된다. 영화제에 참석한 김옥향(대전·23)씨는 “영화 내용이정말 괜찮은 것 같다. 단순히 영상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영화를 제작한 것 같다”며인권영화제에 선정된 영화에 대해 호평했다.인권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는 인권 감수성에 주목해 선정한다. 박현 인권활동가는 “영화가 좋은 소재를 다뤘더라도 대중과 소통할 수 없다면 선정하지 않는다. 인권을 타자화시키는 영화가 아닌, 인권에 대해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인권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영화여야 한다”며 영화 선정기준을 밝혔다.
인권영화제는 ‘반딧불’ 사업을 통해 지역과의 연계도 이어나가고 있다. 성미산 마을 철거주민을 직접 찾아가 공동체 상영회를 여는 등 인권영화제의 장을 넓히는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박현 인권활동가는“표현의 자유와 인권의 연계성은 말할 수없는 것을 말하게 하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이게 하는 데에 있다. 인권영화제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조성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인권 감수성을 지니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