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이 일던 지난 6월, 확대운영위원회(이하 확운위)는 시국선언 여부에 대해 온라인 총투표를 실시했다. 이에 과반수 이상 참여, 과반수 이상 찬성이라는 회칙 성립에 따라 시국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확운위는 당시 국정조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이유로 시국선언을 ‘보류’했다. 사분의 일이 넘는 학우들의 의견이 묵살되는 결과였다.
이 때 확운위는 ‘앞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 시 이 의견에 따라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을 약속했다. 숱한 사람이 우려했던 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은 기어코 일어났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경찰총장의 증인선서 거부와 권은희 증인에 대한 ‘광주의 경찰’ 발언 등 적반하장의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에 드디어 시국선언을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학생총회 때 확운위는 다시 한 번 총투표를 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의 총투표는 온라인 총투표인지라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온라인 투표를 할 당시 ‘엄격한 회칙 적용과 공정한 의견수렴을 통해 의견수렴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인정의 뜻인지 의아하다. 그렇게 찝찝한 두 번째 총투표는 기어이 행해졌다. 그리고, 정족수 미달로 투표함조차 열지 못한 채 총투표는 무산됐다.
분노한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고도 보류와 번복을 외치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번복의 이유로 온라인투표는 공정하지 않음을 드는 확운위의 변명 역시 그들이 신뢰감을 주기 위해 했다던 약속 탓에 수긍하기 어렵다. 그들의 약속을 신뢰했을 학우들은, 스스로 그 신뢰를 저버린 확운위 덕(?)에 두 달 여간 꼼짝없이 민주주의와 진실이 사라져가는 현장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어찌됐든 다시 한 번 총투표의 기회가 왔을 땐 학우들 스스로 그 기회를 떠나보냈다. 낮은 투표율의 이유로 홍보와 시간이 부족했음을 드는 그들의 변명은 확운위의 변명만큼이나 아쉽다 겨우 몇 달 전 100도로 끓던 분노가 그사이 99도가 되어 끓지 않기라도 하는 걸까.
제대로 하지도 않을 국정조사를 시작하며 여론을 무마하려던 여당과 국정원. 그리고 국정원 사태에 연이어 등장하는 굵직한 논란들. 이들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여론이 끓는 것을 두려워하는 쪽은 언제나 불의와 거짓이었다. 그들의 시나리오에 맞춰 분노했다가 사그라들고, 약속했다가 저버리는 우리 모두의 행동들은 고의의 여부를 떠나서 서글프다. 불의를 증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의를 사랑하지 못한다.
- 기자명 편집장
- 입력 2015.06.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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