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대학사회는 학과통폐합과 정원감축으로 시끄럽다.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하기도 하고, 잘 성사되지 않던 전체학생총회가 몇 년 만에 성사되고, 단식농성을 하며 연일 규탄 성명과 집회가 벌어진다. 이제는 교수들이 연구실에서 나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직접 행동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대학의 구조를 조정하는 일로, 교육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학내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하여 학내 구성원이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왜 대학사회는 이처럼 혼란 속에 있는가. 바로 ‘교육의 질 향상’과 ‘학내 구성원의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질 향상은 대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작금에 이루어지는 대학 구조조정은 본 목적인 ‘교육의 질 향상’에 있지 않다. 바로 ‘정원감축’에 중점이 가 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입학정원을 감축하여야 한다며,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낸다. 이들 중 하나가 대학의 재정지원 사업과 정원감축을 연계하여 감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매년 교육역량강화사업으로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대학들의 입장에서 재정지원 사업 탈락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 덕분에 교육의 질 향상은 뒷전이 되고 정원감축에 중점이 되어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감축안을 내놓아야 하므로, 학내 구성원간의 합의 또한 부재한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학생들은 비민주적 절차를 규탄하며 대학본부와 대립하고, 교수들 또한 마찬가지로 갈등을 겪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정원감축의 안에는 대학교육을 어떻게 진흥하고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 전망이 담긴 경우는 드물다. 어떠한 이유로 정원감축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재정지원 사업에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만 낭자할 뿐이다.
  정원감축이 이루어지는 학과나 폐지되는 학과의 기준은 대학 구조조정이 정원감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솔직한 편이다. 바로 ‘취업률’을 지표로 하여 학과통폐합의 대상이 정해지는 덕분이다. 그 덕분에 대학에서는 사회학과, 미술학과, 연극과 등 취업률이 낮은 학과들을 폐지하거나 정원을 상당부분 감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이 흔히 알고 있는‘진리의 전당’이라거나 ‘교육의 장’이라는 시각과는 다르게, 취업률이 나오지 않는 학과는 언제부턴가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처럼 매도되어 제1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다.
  세간에 화두가 된 유명한 재벌기업가가 있다. 그 기업가는 모 대학 재단의 이사장이었는데, 학과제 폐지 등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면서 “가장 고통스럽게 목을 쳐 주겠다”는 놀라운 말을 이메일에 쓴 적이 있다. 이 분은 2004년 서울대학교 강연에서도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라며,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대학에 대한 시각이 어떠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인 교육부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2015 대학정책 추진방향에서 ‘산업구조와 인력수요가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인력 미스매치 문제가 잔존’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학교육에 대해 세분화된 전공교육에서 벗어나 융·복합형의 핵심적 역량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을 제시하였다. 바로 확인할 수 있듯이, 대학이 산업과의 연계를 넘어 ‘인력 미스매치’를 해결하여야 하며 이에 맞게 교육하여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교육부 장관이 신년 업무보고에서 “대학교육의 혁신과 관련해 인문·사범대학의 정원감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교육부가 대학이 대학 본연의 의미로서 갖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직업교육소, 직업훈련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이러한 시각에서 장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세분화된 전공교육에서 벗어나 융·복합형의 핵심적 역량 중심 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겉으로 듣기에는 참으로 좋은 말이다. 요즘의 유행은 융·복합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융합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 강제적 통합이 산출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는 학문분야가 불분명한 학과들을 창조하게 된다. 융·복합의 좋은 예로, 서울의 E여대에서는 ‘신산업융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시류에 매우 알맞은 단과대학을 설치한 것이다. 이 안에는 융합콘텐츠학과, 국제사무학과(경영대학), 글로벌스포츠산업 전공 등이 있다. 스포츠에 글로벌을 갖다 붙이고, 글로벌에 경영을 갖다 붙여서는 새로운 짬뽕 학문을 창조한 것이다. 모두 산업수요에 알맞추어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실제로 이 대학은 “평의원회에서 취업률과 산업발전 방향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학과들은 산업수요가 줄거나 유행이 끝나면 제1의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모 국립대학에서는 설립된지 4년도 채 되지 않은 학부를 없애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학과는 ‘글로벌인재학부’였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대학’에 대한 시각은 대학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잣대’를 들이대며 한국의 대학이 순위가 낮으며, 질이 떨어진다며 비판한다. 대학에 직업훈련소의 역할을 강요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학문의 전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대학’을 다니는 것인지, ‘직업훈련소’를 다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생인지, 직업 훈련생인지 본인의 위치를 확실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가 ‘대학’을 다닌다고 생각하고, ‘대학생’이라면, 또한 ‘자유와 진리’를 강조한다면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보는 시각을 완강하게 거부하여야 할 것이다. 직업훈련소는 그 직종에 맞는 이를 양성하는 곳으로,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과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대학이 갖는 그 본연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지금 이루어지는 단순한 정원감축과 취업률에 근거한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과 일방적인 방식을 비판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대학이 학문의 탐구와 진리 추구를 통하여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곳이며, 그 신성한 가치가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믿는다면, 그 생각이 지금의 현실과 다를지라도 대학이라는 공간이 그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대학 구조조정이 대학 구성원의 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대학의 중장기적 발전방향과 동시에 교육의 질 제고를 목표로 설정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논하여야 할 것이다. 근시안적인 모든 것은 당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여도, 더 멀리 있는 미래와 성취는 충족할 수 없다.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자 연세대학교의 교훈이다. 우리는 대학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닌 ‘당하는’ 현실 속에 있다. 우리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구절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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