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으로 인한 정치 스캔들’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자. 아마 당신의 머릿속을 방금 ‘워터게이트사건’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정에도 도청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치 스캔들이 있다. 사실 ‘도청’과 ‘대통령’이라는 키워드 두 개가 비슷할 뿐 과정과 결과는 매우 다른 사건이지만 현재에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살펴볼 의미가 있다.

  제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새벽,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당시 전 법무장관 주도로 지역 핵심기관장 8명이 모였다. 일단 ‘집합을 건’ 사람의 직함부터 어마어마하다.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을 보면 부산직할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교육감, 부산지검장,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등이다. 면면을 살펴보니 전날 과음하고 새벽부터 복국으로 해장이나 하려는 평범한 공무원들의 모임은 절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그 현장을 당시 정주영 대선후보의 통일국민당이 도청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의 등에 솟은 식은땀도 충분히 상상해봄직 하다.

  “앞으로 내 판단으로는 YS가 되고 경남은 경남대로 부산은 부산대로 중앙과의 관계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는 뭐 남들이 TK 뭐 하지만 단합, 애향심의 방법을 안다. 그건 뭐 배울 점이 아닌가. ……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 발전에는 긍정적이다. 이번에 김대중이나 정주영이 어쩌고 하면 부산 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읍시다.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좀 노골적이어도 괜찮지, 뭐. 아마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거야. 아마 경찰청도 양해…….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그때 대구분들 우리에게 손 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일동 웃음)…안 그렇습니까?”

  ‘초원복집사건’ 녹취록 중 전 법무장관의 말만을 편집한 것이다. 노골적으로 ‘부산의 단결’을 외치고 있다. 저 긴 말들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가 남이가’ 정도가 되지 않을까한다. 그런데 김대중이 ‘이것으로 선거는 내가 이겼다.’고 확신했던 이 사건은 도리어 역풍을 몰고 왔다. 도청의 비도덕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초원복집 회담은 순수한 지역 공무원들의 단합대회였고, 그 현장을 도청한 통일국민당은 비열한 정치공작을 일삼는 당이 되어버렸다. 14대 대선의 결과는 주지하듯 민자당과 김영삼의 승리였고,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를 한 가지 질문. “그래서 그 전 법무장관이 대체 누군데?” 답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냈으며 1972년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들고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씨다. 그야말로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며 그 명성(?)에 걸맞게 오늘(4. 10) 아침 뉴스를 거하게도 장식하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기 전 10만 달러를 그에게 건넸다는 인터뷰를 한 것이다. ‘청와대문건유출사건’으로 비서실장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지내던 그가 다시 한 번 언론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초원복집사건’이 현재에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던 전술에 이제 수긍하셨는지.

  2013년 6월 박근혜 정부의 제 2대 비서실장에 김기춘 씨가 발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여기저기서 ‘유신의 재림’이라든가, ‘소프트 유신’같은 말이 유행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소식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는 인선이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중용(重用)되어온 인물이 40년이 흐른 지금도 대통령의 지척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으면서, 먼 과거 같았던 초원복집사건이 불과 2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인 내가 보아도 참 얄궂은 현대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젊은이는 중앙정보부의 검사가 되어 대공수사를 맡았다.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냈고 1972년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도 관여했다. 1974년 육영수 피살 사건을 맡아 하루 만에 범인의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총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차곡차곡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다가 1991년에는 지역 유지들에게 ‘집합을 걸’ 정도의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3선 국회의원도 했다. 2013년부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내다가 불미스러운 일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2015년 4월 10일에는 ‘뇌물 수수’의 혐의로 아침 뉴스를 장식한다.

  길을 걸어 나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뒤에 남은 발자국을 확인할 때가 있다. 그의 발자국은 현대사의 굴곡 위에 선명하게도 새겨졌다. 아침 뉴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인생’을 곱씹다가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은 발자국을 어디서 어떻게 끝맺게 될지, 그리고 그 발자국을 지켜보는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새삼스러운 궁금증과 함께 새삼스러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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