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14. 10. 20.

글의 소재를 선택했지만 이것은 정말 난감한 주제다. 이 거대 담론을 앞에 놓고 나 자신이 몸서리치도록 왜소함을 느낀 요 며칠이었다. 고문도 이만저만한 고문이 아니었다. 쉬울 것 같은 흔한 담론에도 막상 질문지를 받고 보면 전전긍긍하는 것에서 인간의 무지와 왜소함이 숨어있듯이 말이다. 언필칭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아직은 우주의 비밀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현상을 묻는 물음에는 총알이지만 궁극적인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모두가 느림보가 되고, 그 해답 또한 각양각색이다. 즉 영원하지도 않고 불변도 않다는 얘기다. 일테면 ‘오늘 아침 뭘 먹었냐?’는 전자에 속하고 ‘왜, 먹었느냐? 왜, 하필 그걸 먹었느냐? 왜, 사느냐?’는 후자에 속한다. 그래도 본 주제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 쉽게 해결해준 선지자의 멋스러운 말씀이 있었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본 주제를 통째로 삼킬 수 있어서 본 주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한 말은 공자도, 석가도, 분석심리학자 융도 뒷받침하고 있다. 공자의 ‘조문도석사가(朝聞道夕死可),’ 석가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융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이 그것이다. 

 이쯤에서 제 무지를 일찍이 봉합하고 본론에 들어가기로 한다. 요즘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면 곧 나라가 거덜이 날 만큼 사회기강이 뒤죽박죽이고 국민의 삶의 정서가 매우 취약하다. 이를 촉발시킨 것은 미증유의 세월호 침몰 사고인데 이로 인하여 우리사회의 치부와 오랜 적폐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 진상규명을 두고도 사회는 완전히 둘로 양분되어 앙앙불락(怏怏不樂)이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참담한 현실에 어떤 비상수단을 써야 되지 않나하는 불안감과 조급증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사회는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 아마도 이 모든 문제도 시간과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동하여 해결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간은 논외로 하더라도, 어떻든 인류의 역사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일시적 부침은 있었지만 넓게 보면 발전하여온 게 사실(진리)이다. 그럼 발전의 원동력과 실체는 무엇인가? 여기서도 여전히 현상과 실체는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나는 연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다가 크게 공감하는 말이 있어서 초서(抄書)해둔 것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 선도 없고 절대적 악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선과 악의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 그 자체가 선이다. 즉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균형’을 ‘보이지 않은 힘’으로 치환시켜봤다. 균형을 ‘조화’라고 말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담론을 설명하자면 너무 광범위하여 나로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다만 그간 배운 지식들을 비틀고 짜깁기하여 ‘보이지 않는 힘’ 즉 ‘균형’의 가설을 설명하려한다. 다윈의 ‘적자생존(適者生存)도 크게 보면 모두 자연계의 ’균형‘의 힘 내지 ’균형의 원리‘라고 본다. 자연계에서 어느 개체가 월등히 힘이 세면 오늘날의 자연계의 평형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유구한 세월 균형과 정화 과정을 거쳐 오늘이 이르렀다. 오늘날 인간이 난개발을 하여 지금 지구가 죽어간다는 환경학자들의 우려도 인간의 지혜와 보이지 않는 힘, 즉 ’균형‘의 힘이 작동하여 멀지 않은 장래에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크게 보면 여전히 이 지구상에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만큼 선행을 하는 사람도 함께 공존할 것이다. 전쟁으로 균형을 잃은 사회가 있고, 잃은 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인간의 노력도 여전히 눈부시다. 일찍이 인류가 꿈꾸어온 범죄 없는 이상사회는 말 그대로 이상(理想)이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오늘에 비춰 봐도, 이미 균형을 잃어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당장 직업을 잃게 되는 수십만의 경찰 공무원은 빵을 달라고 거리로 몰려나와 데모를 진압하던 자가 데모 가담자로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행복은 불행이 있기에 가능하고, 지나친 행복 또한 마냥 반길 것은 못되고, 지나친 불행 또한 영원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균형이 아닐까.....
 비감은 금물이다. 여전히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 즉 균형의 힘에 의해 앞으로 발전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다.

*칼 구스타프 융 : 고고학, 연금술, 점성술, 시화, 동서양 철학, 천문학,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반영하였다. 또한 융의 내향성-외향성 개념은 성격을 구체적인 특질로 조명하여 성격에 대한 이해를 확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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