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 2013. 11. 11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존재 자체만으로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친구와 함께 있더라도 서로 대화하거나 같이 활동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흔치않은 기회를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우리학교 학생복지위원회(이하 학복위)에서 주최하는 ‘농촌연대활동’ 즉, 농활에 참가 신청서를 내는 것이다. 혹자는 “농활 그거 가봐야 별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농사만 망치고 온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건 농활에 가기 귀찮거나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농촌에 계신 분들은 우리를 일용할 ‘일손’이 아닌 반가운 ‘손님’으로 맞아주신다. 그저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이 왔다는 사실에 신나하시고 고맙다고 하신다. 우리가 소처럼 일을 잘하거나 연예인처럼 재롱을 부리지 않아도 단지 우리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시는 것이다.
나는 저번학기 봄농활, 이번학기 가을농활에 모두 다녀왔다. 농활은 학복위에서 주관하여 자유롭게 지원자들을 모으는데 대략 20명 정도의 인원이 2박 3일간 농촌으로 떠난다. 농활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많은 학우들을 위해 농활에 가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돌아보자. 우선 첫 날은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에 출발해서 1시간 남짓 차를 달리면 2박 3일간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될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회관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짐을 풀고 회관 거실에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 이번 농활에서 무슨 역할을 맡을지 정한다. 식사를 담당할 식사주체,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애교주체, 아침마다 기상알람을 울려줄 기상주체 등 여러 역할을 배분하고 나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는다. 그러고 나서 이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인사를 드리는데 모든 어르신들이 마치 명절 때 내려온 자식 보듯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리고 두 번째 날, 언제나 농활은 두 번째 날이 하이라이트다.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임의대로 짠 조별로 농민분들과 함께 일터로 나간다. 이 글의 분위기가 아무리 ‘농활 갈만하다.’지만 농사일이 어느 정도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 가을농활에는 콩 베기, 사과 따기, 콩 수확 후 밭 정리하기 이렇게 3가지 일을 주로 했는데 당연하게도 이 3가지 일들의 난이도는 다르다. 복불복이다. 콩 베기를 나간 학우들은 하루 종일 요통에 시달렸다. 반면에 인자하신 농민분을 만나 밭 정리를 맡은 나는 적당한 운동으로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이틀차의 농사일은 아침부터 오후시간까지 계속되는데 그 사이 한 두시간 쯤 일을 하고나면 어르신들이 새참을 준비해주신다. 상투적인 표현만 같은 ‘고구마에 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이 실제로 일어난다. 이 행복은 이루 지면에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정말 진짜 무지 맛있다는 것만 알아두시기를. 새참을 먹고 나서 다시 조금 일을 하다보면 점심을 준비해주시는데 손님이 오신 만큼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탕수육을 시키기도 하고 삼겹살을 꺼내기도 하는 등 ‘특식’을 준비하신다. 반나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직접 만드신 온갖 나물들과 먹는 삼겹살을 상상해 보라. 점심을 먹고 나면 우리 모두의 농사력은 급상승한다. 모두 소가 된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뭉쳤던 근육은 고구마와 고기에 눈 녹듯이 풀리고 막걸리 기운은 두뇌가 ‘힘들다’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해준다. 그렇게 저녁 즈음까지 일을 하고 우리는 다시 회관으로 모인다. 모여서 다들 씻고 뭉친 근육을 푼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 마을회관에는 안마의자가 있다. 물론 어르신들이 쓰시도록 비치한 안마의자지만 어르신들이 안 계실 때 우리도 안마의자를 통해 다른 세상에 다녀올 수 있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를 어느 정도 풀고 나면 식사주체가 저녁을 준비한다. 두 번째 날의 저녁메뉴는 삼겹살. 혹시 ‘으, 2연속 삼겹살이라니 질려..’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오산이다. 질리지 않는다. 농사일을 경험한 우리의 몸은 그 어떤 음식에도 반응하게 된다. 흥과 윤기가 넘치는 저녁식사가 끝나면 방을 치우고 회관에 찾아오신 어르신들과 얘기도 하고, 회관에 놀러온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농촌의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놀아주기 쉽다. 스마트폰을 쥐어주거나 컴퓨터 앞에 앉혀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농촌 아이들은 아직 놀이터에서 하는 탈출놀이, 숨바꼭질을 하고 논다. 뛰고 소리 내서 웃으면서 논다.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재밌게 논거 같을 정도로 즐거웠다. 밤이 깊어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우리들의 시간이다. 바로 뒷풀이 타임.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맥주를 곁들여가며 농활이 어떤지 얘기도 나누고 처음 만나본 다른 과 사람들과 대화해보기도하며 친목을 다진다. 떠들고 놀고싶다면 회관 안에서 즐겁게 놀고 아니면 밤의 시원하고 맑은 농촌 공기에 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도 보면서 친한 사람과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회관 밖을 산책하기도 하고 농활의 밤은 정말 좋다. 이런데서 추억이 안 나오면 대체 어디서 나오겠는가.
아침부터 점심 때 까지 농가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고 다시 숙소에 모여 롤링페이퍼도 쓰고 뒷정리를 하고서 학교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면 2박 3일간의 농활이 끝이 난다. 이처럼 농활은 단순히 가서 농사일을 돕고 오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 가서 농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직접 경험해보기도 하고 추억과 보람을 안고 오는 것이다. 일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은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가서 전문적인 농사지식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대부분 방법은 단순하지만 일의 양이 많은 곳에 투입된다. 나는 밭 정리가 끝나고 밭 주인 할머님께서 “덕분에 며칠 걸릴거 오늘 다 끝냈어.”하고 말씀하실 때 느낀 보람이 생생하다. 우리가 농활 신청서를 내고 농촌에 간 순간, 우리는 그 행동만으로 여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