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11. 17.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중지(衆智, 대중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난 10월 25일에는 한국교원대학교를 졸업한 다수의 동문이 참여하는 홈커밍데이 행사가 있었고, 이 행사에서 저 역시 중지를 모아 행사를 원만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지를 좀 고상하게 표현하면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 됩니다. 다수는 혼자보다 강하고 똑똑하다는 것이지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도출할 수 있는 이러한 의사결정방식은 집단지능, 협업지성, 공생적 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합니다. 집단지성은 다수가 협력과 경쟁을 통해 얻어낸 집단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애초에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수의 동문들이 참여할 수 있었을까요? 미숙하고 매끄럽지 않은 행사의 진행에도 왜 대다수의 동문이 이 행사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격려했고, 사진 속에 나타난 동문들의 얼굴이 행복한 모습을 띈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행사의 준비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언제 포기할 것인지 예의주시했습니다. 총동문회장인 저 역시 언제나 확신에 가득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동문들의 연락처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참여할 동문의 수를 예측하기 어려웠고, 행사를 감당하고 치러내기 위해 나설 수 있는 동문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초청해야 할 동문들 거의 전부가 현직에서 매우 바쁘고 중대한 업무에 매여 있었습니다. 임원 중의 다수는 홈커밍데이 행사 직전까지 국정감사를 감당하느라 밤을 샜고, 동문 교수들은 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면접을 치르고 나서 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나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중지를 모아 만들어낸 집단지성의 덕택이었습니다. 7월 초 2박 3일의 전국 투어를 통해 전국 각지에 있는 동문들을 찾아가 이 행사를 치러야 하는지,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답했습니다. 해야 하고, 최대한 돕겠다. 그리고 행사 준비에 들어가면서 동문들은 그에 적절하게 여러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밴드를 만들고, CMS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재능이 필요할 때 재능을 기부하였고, 돈이 필요할 때 기꺼이 찬조금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미진한 준비 현황을 지적함으로써 행사를 자극하였고, 더 좋은 아이디어와 사람을 데려다 주기도 했습니다.
배드민턴 경기장을 가득 메운 동문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강연, 청출어람>, 그리고 케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선 동문과 재학생의 모습, 삼삼오오 은사님·동문·재학생들이 어울러 찍은 사진 속에서 성공이란 두 글자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리셉션에 이은 총동문의 밤 행사는 조촐함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습니다. 학교 리더의 진솔한 고백과 학교 발전에 대한 구상은 동문들이 학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야로 이어지는 후배 동아리들의 열정적 공연은 학교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으며, 앞으로 더 강한 생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30여 년 가까이 우리를 근엄하게 가르치셨던 이태욱 교수님의 멋진 공연, 그리고 김경래 교수님의 김동적인 퍼포먼스를 보면서 동문들은 자신들이 진실로 환영받고 있으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질 때는 하늘도 응답한다고 하였는데, 이번 홈커밍데이 행사야 말로 그에 어울리는 날씨였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8월 9일에는 태풍이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막상 행사 당일이 되자 교원대는 선풍기를 풀어놓은 듯이 시원하고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모든 총동문회 임원들이 기꺼이 이 행사의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이는 홈커밍데이 행사 당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사 전 주초에 가을비가 내려 교원대의 낙엽들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였고, 당일의 쾌청한 날씨는 동문들을 아름다운 옛 추억의 세계에 빠뜨렸습니다. 홀로 걷는 모습이 더 고고하게 보인 까닭을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 일부 준비된 행사에는 약속된 사람들이 모두 참석치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요.
한 가득 모아진 많은 동문의 마음과 발길에서 커다란 보람을 찾게 됩니다.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달려가며 현장 교육을 이끄는 우리 동문들에게 이번 행사는 지난 30여 년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분적인 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집단지성’의 자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국 각처에서 교육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닥뜨리는 우리 동문들은 동문의 네트워크를 통해 더 잘 소통할 수 있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능력은 학생과 교육계의 동료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모든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인류 공영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을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육의 중심, 세계 교육의 중심”이라는 명문이 죽은 돌에 새겨진 글씨에서 활활 타오르는 열정적 교육자들의 심장으로 옮겨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라 할 수 있을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