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 2013. 11. 11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니체는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내가 당신의 정신에 따라 예술이 삶의 최고의 과제이며 진정한 형이상학적 활동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진지한 독자들을 계몽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이러한 길을 앞서 나간 고상한 투사인 당신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자 하는 바입니다.”라며 자신의 철학적 사상이 바그너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비극의 탄생’은 예술의 본질을 만물의 근원적 일체성으로 귀일(歸一)을 희구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개체의 개별 존재를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 ‘아폴론적인 것’의 상극과 조화로서 특정하고자 한 작품이다. 니체는 예술이 이 두가지 조화 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니체와 바그너의 만남에서 바그너가 니체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은 없지만 니체는 그의 사상을 형성해가는 데에 바그너의 영향을 지대하게 많이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니체의 작품에 고스란히 등장하며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바그너는 니체 사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니체와 바그너가 교류하면서 가졌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그리스 문화와 고대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관심은 바그너의 음악극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바그너는 그의 음악극에 독일과 북유럽의 신화를 소재로 사용했다. 음악과 비극에 대한 니체와 바그너의 공통적인 해석과 관심은 둘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니체가 고전학 교수에 오를 정도로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바그너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며 니체는 음악의 대가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을 것이다.
니체와 바그너의 이러한 교류를 통해 탄생한 니체의 작품이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이다. 이 작품의 예비적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는 ‘그리스적 음악극(Das griechische Musikdrama, 1870)’, ‘소크라테스와 비극(Sokrates und die Tragödie, 1870)’ 두 개의 강연문과 ‘비극적 사유의 탄생(Die Geburt des tragischen Gehanken, 1870)’ 등이 있다. 그리스 비극과 음악에 대한 니체와 바그너의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았다면 둘의 관계가 성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바그너는 고대적인 것, 정통 그리스적인 요소를 지닌 극작품을 원했다. 즉 이상적 상황으로서의 신화성이 필요했던 것인데, 바그너에게 그것은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었다. 바그너는 아이스킬로스를 음악정신으로부터의 탄생이라고 명명하고 에우리피데스를 데카당스라고 정의내린다. 바그너의 이러한 해석은 음악적인 근원이 절정을 이루는 아이스킬로스에서 비극이 탄생하고, 음악적인 요소가 퇴화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종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고 있다. 니체는 바그너와 의견을 같이 하며 에우리피데스의 소크라테스적 경향이 바로 비극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니체는 근대인이 예술을 수용하는 감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내세운다. 근대의 예술은 사람들을 더욱 둔감하게 하고 탐욕스럽게 되도록 할 뿐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근대 예술의 부적절한 감성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잘못된 길로 이끌고 사람들은 의지조차 갖지 못한 부적절한 감성의 노예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또한 바그너의 영향으로 인해 니체는 전통 형이상학적 철학 풍토에 반기를 들게 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반시대적 고찰’과 아울러 삶의 부정을 긍정으로 돌리는 계기를 구성한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통하여 전통적인 현상과 물자체의 이원적인 대립을 해소시키며 한층 더 나아가서 근본적인 요소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니체 철학에서 후기에 절정을 이루는 초인개념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특히 소크라테스적 요소를 가장 비가치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니체는 현대문명이 품고 있는 이성 중심의 일차원적인 사고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결국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극의 본질, 곧 디오니소스적인 내용과 아폴론적인 형식의 조화를 통해서만 삶의 가치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건강의 악화와 회복을 되풀이하며 삶은 영원히 회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음악을 통해 삶의 기쁨과 정신의 해방을 느꼈다. 병든 정신과 육체는 그야말로 그 자체가 비극이다. 이러한 인간의 비극은 그대로 현대사회의 비극으로 등장한다. 도저히 헤쳐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 삶의 의지를 찾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니체에게는 음악이며 비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