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이정도로는 춥지 않다고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객기를 부리다가 감기에 걸려 기침이나 해대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감기 조심하라고 당부한지 이틀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 모양이다. 방에 쪼그려 앉아 코나 훌쩍대고 있다 보니 문득 작년 이맘때쯤이 떠올랐다. 궁상맞기 짝이 없지만 작년에도 감기 때문에 고생 꽤나 했으니. 확실히 작년에는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 돌보기도 귀찮았다. 야자가 끝나고 학교 앞 편의점에 들어가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있었으니. 몸보다는 다른 쪽으로 온통 신경이 쏠려있었던 것 같다. 수능, 대입. 고3의 가을은 유독 추웠다. 그리고 이제 내 동생이 그 시린 가을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제 저녁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이 면접을 보러 갔다고. 아침 7시 반부터 시작되니 학교에서 가까운 찜질방에서 잠을 잔다고. 동생이 막 고 3이 됐을 때가 떠올랐다. 첫 날 수업이 끝나고 ‘힘들다, 힘들다’를 연발했다. 물론 난 동생에게 나잇값 못한다고 타박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 따뜻한 위로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놈의 성질머리가 못돼서 무심결에 틱틱거리고 말았다. 오빠도 다 겪은 일이다, 너 말고 전국에 수험생들이 몇인데. 이런 말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털어 놓는 푸념 아닌 푸념을 싹둑 끊어버렸다.
그 뒤로도 동생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내가 동생에게 준 것은 위로나 격려가 아닌 야단이었다. 아 정말 나란 사람. 그렇게 시간은 지나 9월이 되었다. 9월이 되니 동생은 유독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모의고사 준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대학원서 접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딜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동생. 평소의 나라면 어딜 써야 할지도 모르냐며 인정사정없이 강펀치를 날렸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확실히 오고 싶어 했던 이곳을 빼곤 어딜 집어넣어야 될지 몰라 이리저리 줏대 없이 휘둘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다. 나도 작년에는 동생과 같은 입장이었다는 것을. 힘들 때마다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누구보다도 같은 학생의 입장이었던 동생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 미안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해주는 나에게 얼마나 섭섭했을까. 그러면서도 자기 오빠라고 대화가 끝날 때마다 잘 지내라고, 잘 지내라고. 누가 더 어른인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동생이 종이에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뭔가 싶어 살짝 보니 ‘저는......’으로 시작되는 장편의 글을 쓰고 있었다. 아하, 자기소개서구나.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내 한 달을 잡아먹었던 자기소개서였으니 척 보면 척이었다. ‘도와줄까?’라고 묻자 동생에게서 나온 첫 말은 ‘아냐, 내가 할게.’였다. 안 써지는 글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딱 보이는데도 내가 어떻게 대할지 알고 있으니 거절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못난 오빠로서 미안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 순간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보자 말하고 동생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챘다. 내심 봐주길 바라고 있었는지 동생은 별 말이 없었다.
그 날부터 추석이 끝나고 2주간 점호 후 두 시간은 동생의 자기소개서를 봐줬다(이 과정에서 내가 괴롭힌 친구들과 은사님들께 감사를).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검토를 마친 자기소개서 최종 수정본을 보낼 때 동생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사실은 내가 먼저 했어야 하는 말인데. 훨씬 이전에 했어야 하는 말인데. 동생의 면접이 끝났을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잘 봤냐고. 동생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나 잘 봤다고. 대답 잘 했다고. 내 일 마냥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가 풀어졌다. 기쁘게 말해 줄 수 있었다. ‘잘했다.’
형제 관계에 있어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들이 꽤나 많다. 그런 일들을 많이 보았고, 많이 겪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붙었다 하면 싸우고, 서로 자존심은 있어서 절대 지려하지 않고.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었으면서 막상 동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기억을 떠올리면 손에 꼽을 정도다. 동생과의 관계에 있어 우선순위로 두었던 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벌써 수능을 앞둔 동생을 보니 오빠답게 대하지 못했던 과거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한참이나 어리게 봤던 동생이 벌써 열아홉 절반을 지났다. 뻔뻔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동생에게 좋은 오빠이고 싶다. 20년간 못난 오빠로 살아왔으니 이제는 동생에게 좋은 오빠로 남고 싶다. 이 지면을 빌어 말하기엔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동생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