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득해진 새내기 시절을 떠올려본다. 고된 입시를 마치고, 그동안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마음 맞는 동아리에 들어가 끼를 펼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과제가 많아도 관심있는 행사가 열리면, 모두 접어두고 티켓을 끊는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에 흠뻑 빠져있다가, 문득 진지한 고민이 든다. “이제 그만 놀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한 건 아닌가?”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대학생활 중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러한 고민의 과정에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사회 속 나’의 모습이 녹아있다. 지리교육과 한지은 교수는, 두 모습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이어갔던 그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사회 운동의 물결에 흠뻑 젖어드는 한편, 가방 속에는 아기자기한 수필집을 넣어 다녔던 한지은 교수. 그 고민의 흐름과, 그 속에서 찾아간 ‘행복’의 의미에 귀기울여보고자 한다.
◇ 학창 시절 가장 인상깊게 읽으신 책이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을 생각해보니까 크게 두 가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제가 활자 중독증에 가까울 정도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제 나이보다 항상 윗 학년들이 읽을 책들만 보고, 태백산맥 같은 거를 중학교 때 보기도 했어요. 별 문제의식 없이 이야기가 재밌어서 책을 읽다가 대학에 왔는데, 대학에 오고 나서는 책 읽는 경향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제가 95학번인데,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80년대 학번도 아니니까 사회적인 문제 하고도 별 상관이 없이 X세대, 즐기면서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아직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된 문화가 남아있던 시기에 제가 대학에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되게 중요했던 질문은, 내가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라는 거였어요. 좋은 대학에 붙고,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나서 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되게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생각했고,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제가 그 뒤에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사회적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생각하게 해줬던 책은 뭘까 생각해보니, 그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었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짧은 편지글이에요. 20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동안에 쓴 편지글인 거예요. 편지의 내용은 수감생활에 관한 것도 있고, 계절에 관한 것도 있고,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여러 가지 글들이 섞여 있는데 그 일부 일부에 사색의 내용이 나와요. 요새 학생들은 신영복 교수님이 처음처럼 글씨체로 알려져 있어서 서예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신영복 교수님이 그때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쓴 편지 문구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한 내용들이에요. 되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분도 아마 엄청나게 똑똑하다는 말을 평생 듣고 자랐을 거고 실제로 그런 상태로 엘리트 교육을 받아서 대학교의 육사 장교로까지 지냈는데, 그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고 20년 간 수형생활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힘들다는 고난의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에 이런 일화가 있어요. ‘감옥살이에서 제일 힘든 것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나를 괴롭게 하니까 그 사람이 밉잖아요? 독방이 아니라 여러 명이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열기도 있을 거고요. 우리도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면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의 책임이나 이런 것들을 쉽게 포기하게 되는 그런 시대잖아요. 내가 힘들고 내가 견디기 어려운 거를 주로 얘기하죠. 그런 사람이 되라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자기가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그걸 자각해야 된다고 말해요. 사실은 잘못된 이유로 날 감옥에 가둔 사람들, 우리가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그런 공간에 넣은 사회가 문제인데,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거죠. 그럼 함께하지 못하고,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책에서 자주 나오는 말로는 연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신영복 교수님 호가 쇠귀의 경읽기 할 때 ‘쇠귀’예요. 그래서 이 서체를 쇠귀체라고도 부르는데, 대학시절에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렀어요. 서로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처럼 글씨가 되어있다고 해서요. 이 서체도 되게 좋아하지만, 그때 저한테 중요했던 것은 그런 것 같아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처음으로 느꼈던.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다가 내가 그런 거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생각하게 만들어준.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실제로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이 대개 대학생이 됐을 때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기 이전에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것은 맞지만 사실은 모두가 노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것들이 도와줘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조금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 지리학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연대’라고 하는 문제거든요. 연대라는 것은 다 입장이 다르고 다 상황이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느냐는 문제인데, 요즘 갈등도 심하고 차이도 큰 모습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것만 봤으면 제가 80년대 학번이랑 똑같았을 텐데,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몰래몰래 보면서 좋아했던 책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었어요. 최근에 이 수필집이 되게 화제가 된 게 소확행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여기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라고 하는 챕터거든요. 저는 대학 시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이나 수필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때 당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하루키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허무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몰래 읽었어요. 저는 치열한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하루키 수필집이 나한테 어떤 의미였나 생각해보니까 개인으로서의 내가 좋아하는 것. 사회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해준 것 같아요. 수필집을 읽으며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수필집을 보면 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돼요. 마라톤을 좋아하는구나, 재즈음악을 좋아하는구나, 고양이를 좋아하는구나, 여행은 어떤 거를 좋아하는구나, 음식은 샐러드를 이만큼씩 먹는구나, 맥주는 어떨 때 마시구나, 이런 것들이 하루키의 수필을 보면 되게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시시껄렁해 보이는 신변잡기적인 얘기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은 그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커피믹스가 두 종류가 있는데 “저는 테스터스 초이스가 좋아요” 이런 애기를 하면 “그냥 주면 먹지, 까다롭게” 하는 분위기였어요. 취향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되게 까다로운 사람, 혹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를 선호하지 않았었어요. 하다못해 대학생들조차도요. 사실은 얘기할 수 있잖아요. “저는 이 두 잔 안 마시고 한 잔만 이걸로 마시고 싶어요” 이렇게요. 제가 지금도 맨날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기호식품은 배가 부르려고 먹는 게 아니잖아요.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먹는 건데 저한테 똑같은 걸 먹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사실은 싫었어요. 똑같은 속도에 똑같은 걸 먹고 똑같은 걸 하라고 하는 게 싫었는데, 소심하게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저는 싫어요”, “저는 이거 먹겠습니다” 얘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책을 보면서 ‘그래, 나는 이런 거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여행도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음식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생각했어요. 취향이라고 단순화 시킬 수는 있지만, 자기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게 한 책이랄까요? 그래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시작된 것 같고, 개인적인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하루키 책은 몰래 가방에 넣어두고 사회과학 세미나나 집회도 쫓아다니면서 늘 그랬던 거죠. 이 두 개가 제 학창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
◇ 두 책이 교수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때가 5·18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하고, 한총련이라고 해서 학생회 총연합회 같은 것들도 생기고, 민주노총이라는 것도 그 해인가 출범을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는 한 달 동안 집에 못 간 적이 많아요. 서울대에서 행사를 하면 자원봉사자를 뽑았는데, 모든 자원봉사를 저는 다 갔어요. 또 그때 처음으로 지방자치 선거가 시작이 돼서 서울시장을 처음으로 민선에서 뽑았어요. 그래서 거기에도 가고 1년을 거의 그런 식의 것들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런 체험들에 조금 열정적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길로 계속 가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하루키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대학시절 저의 외부의 모습을 봤을 때는 총학생회장도 나가고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되게 열정적이었는데, 사실 저는 속으로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내가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하나의 입장을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꼭 보이는 거예요. 하나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게 나한테는 잘 맞지 않는 화법이랄까요. 그래서 약간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 2학년, 3학년 올라가고부터는 그런 식의 활동들은 점차 뒤로하고 하루키의 세계로 넘어간 거죠.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은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그렇지만 어떤 느낌도 있었냐면 주체의식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래도 나의 삶이 그런 식의 사회적 도움이나, 하다못해 해로운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과학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게 된 것도, 나의 대학시절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봤던 것들은 늘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이기도 하지만 같은 세대나 구성원이라는 생각들은 가지고 있는 거죠.
제가 개인적인 취향을 따르는 것, 영화를 열심히 보기도 하고 여행을 열심히 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네가 지금 이런 사회에서 그래야 하겠니” 말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어떤 선배들은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저는 배낭여행을 갔는데, 그때만 해도 자유여행이 89년에 해제돼서 저희 학과에서 배낭여행을 자유롭게 간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저는 1년 동안 준비를 해서 여자 셋을 모아 같이 가고 그랬어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나라는 사람한테 뭐가 중요한지를 활용할 수 있었던 거죠. 만약에 내가 사람들 사이의 나라는 것만 고민했으면 뒤로 미뤘거나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갔다오고 나서는 “아, 나는 이런 거를 해야 정말 좋아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게 된 과정이 된 것 같아서 하루키는 저한테 그런 선생님이었어요. 신영복 선생님은 인간적으로 존경하구요. 둘 다 필요한 것 같아요. 하나만 있으면 불행해질 것 같아요. 요새 학생들은 개인의 세상은 매우 충만한데, 이거만 충만한다고 해서 꼭 행복한 거는 아닌 것 같아요. 이거는 어느 시대에도 할 수 있는 건데 제일 조금 아쉬운 건, 자신이 사회구성원의 일부라는 것. 일종의 그런 세계가 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거는 학생들 책임은 아니고 그 이후 사람들의 책임이긴 하죠. 그렇게 할 필요 없다고, 네가 더 좋은 성적을 받고, 빨리 집을 사고, 더 빨리 사회적 성공을 이루면 된다고 가르친 사회의 문제이기는 하죠. 하지만 그런 거를 조금 알려줄 수 있는, 우리 같이 이렇게 하나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그런 책들 조금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 책과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돌아봤을 때, 그때는 이게 “내 삶을 결정지을 제일 중요한 책이야” 이렇게 생각한 적이 전혀 없었어요. 하루키를 본다는 걸 드러내놓고 얘기한 것도 한참 지나서의 일이고. 그때만 해도 “그냥 나는 이게 참 재밌는데 사람들은 하루키 본다고 하면 뭐라 하겠지?” 이런 식의 생각들을 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피씨통신’이란 게 있었거든요? 인터넷 하려면 전화선으로 연결하는 피씨통신에 방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 방이 생긴 거예요.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 방에 몰래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막 속이 풀리는 것 같은 거예요.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좋아하는 게 나쁜 짓은 아닌가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이랑은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의 신영복 선생님은 처음처럼의 글씨체로 유명하고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 책들을 ‘내 인생의 지표로 삼아야지’ 하면서 읽었던 것은 아닌데, 돌이켜보니까 그때 이 책이 그 뒤에 나를 결정짓는 데 되게 중요한 역할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사후적으로 하게 된 거죠. 그래서 꼭 이 책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어떤 책이어도 좋다고.
오히려 책보다는 아까 전에 말했던 두 가지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왜냐면 교사가 될 때에도 필요한 질문이거든요. 저도 사대 출신이니까 교생 실습을 갔는데, 그 중간에 답사가 있었던 적이 있어요. 꼭 참여해야 되는 답사는 아니었는데, 내가 꼭 가고 싶은 답사였어요. 왜냐면 가을에 영월에 가는 답사였거든요. 너무너무 가고 싶어서 막 고민을 하다가 갔어요. 교생 실습하면 일지를 쓰고 맨날 검사를 하잖아요? 그때 내가 일지에 그런 문구를 썼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요. ‘교사로서의 나도 행복해야 하니까 결정을 했다. 나는 주말에 이 답사를 갔다 오기로 결정을 했고,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막 썼어요. 말도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썼더니 담당이었던 선생님이 맞다는 거예요. 교사라는 삶이 일회적인 게 아니잖아요. 사회적 책임도 있고 학생들에 대한 책임도 있고 여러가지 직업적으로 오는 역할이 어떤 직업군보다 높은 건 사실인데, 또 하나, 행복한 교사가 되는 건 필요한 것 같아요. 행복한 교사가 되는 방법은 직업쪽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나라는 사람을 잘 아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우리가 그런 건 안 배우잖아요. 행복한 교사가 되는 법은 안 배우잖아요. 지금은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어려운 과정이니까 치열하지만, 아마 교사가 되고 나서는 제일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 교사가 되는 것. 교사가 아니어도 어떤 직업군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아는 게 필요하니까요. 이 두 가지 축이 어떻게 보면 삶에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행복학에 관련된 최근의 책에 보면, 행복은 ‘재미’와 ‘의미’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고 그래요. 어떤 일은 아주 재미있지만 그 대신 의미는 없어요. 대표적으로 도박이랄지 술이랄지 이런 거죠. 반대로 의미는 되게 큰 것들이 있어요. 주로 아이를 키우거나 그런 거죠. 이런 것들은 의미는 매우 크지만 재미는 없어요. 그런데 두 경우 다 완전한 행복은 충족하지 못해요. 재미와 의미를 다 만족시키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거죠. 최근의 행복 연구들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의미 있는 삶, 하루키 책은 재미있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결국 행복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라면 그 두 가지를 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학교 학생들도 어떤 직업을 갖든 특히 교사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하지 않은 교사는 좋은 교사도 될 수 없을 수 있거든요. 저도 강의 생활을 거의 15년 그렇게 해보면, 내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때는 별로 수업이 잘 되지 않는 경험들이 많이 있어요. 교사로서의 어떤 책임이나 의무나 이런 얘기들은 많이 해줬을 것 같으니까. 이런 얘기도 해주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좋겠어요. 재밌는 것을 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는 거. 진짜 재밌는 것은 의미도 있는 삶과도 연결된다는 거. 그리고 대학시절에 그런 책들, 혹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조금씩 찾아가는 거. 그걸 소홀히 하고서는 딴 것만 하다가 나중에 실제로 원하는 곳에 들어가게 됐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아서 금방 그만두는 친구들을 되게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저는 대학시절에 참 쓸데 없는 짓 많이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보면 너가 하면 늘 재밌어 보인다고 이야기는 했었거든요. 그런 것도 중요하다, 너무 그걸 간과하고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