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한 해를 이루는 평범한 날이지만, 괜스레 마음이 설레는 하루다. 아주 작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처음 마주한 날, 바쁜 삶에 치이다가도 문득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느끼는 날. 생일이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과 고마움이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평소 얼굴 보기가 어려웠던 친구들이 열어준 파티에 어안이 벙벙하여, 얼떨결에 고깔 모자를 쓰고 초를 불었다. 케익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피식 웃고, 때론 격한 공감을 하며, 조그만 자취방을 도란도란 채웠다. 기차를 타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니, 어색함과 포근한 온기가 감돌았다. 식탁에 둘러 앉아 담백한 미역국을 먹으며, 그동안 바쁘다고 얘기하지 못했던 학교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랜만에 듣는 딸의 수다에 대한 반가움, 작은 한 마디에도 귀기울이는 관심, 힘들어도 잘 지내다 왔구나 하는 흐뭇한 미소가 모락모락 주방을 감쌌다. 가장 평범한 존재이지만, 가장 가깝고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벅찬 온기와 감사를 느꼈다.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참 행복한 존재구나. 내 삶이 이렇게 따뜻했구나.
붙잡지 못할 행복들이 쏜살같이 지나간 그날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존재가 연기처럼 삶을 마감한 후이기도 했다. 작은 몸으로 늘 단단하게 대중 앞에 섰던,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착한 웃음을 주었던 사람이, 끝내 별이 되었다. 한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 그의 비보를 접하며 멍하니 충격에 빠졌다. 수많은 예능에 출연하는 유명인이지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 것 같았던 사람. 늘 가까운 곳에서 맑은 웃음과 소소한 응원을 전하고 있을 것 같은 사람. 그의 부재는 일상의 일부가 사라진 듯한 충격이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11월 3일의 밤은, 숨막히게 허망했다.
그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가깝고 익숙한 존재들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지난 며칠, 새벽에 일하던 환경미화원이 숨졌다. 휴직 상태에 있던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막 태어난 아이가 차가운 골목에서 숨을 거두었다. 형과 라면을 끓이려다 참변을 당했던 아이가, 끝내 형의 곁을 떠났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을 존재들. 거리에 나가면 마주했을 익숙한 얼굴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알려지고, 알게 모르게 기억에서 사라졌을 그 죽음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애도로 잊힐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지난 6일 새벽,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환경미화원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 트럭에 타고 있었다. 그는 차량 내부에 타고 있던 게 아니라, 차량 뒤 발판을 딛고 있었다. 차량 발판 설치는 법으로 제재된다. 하지만 관할 구청은 이를 침묵했다. 그가 일했던 대구 수성구에서는 한 권역당 두 명의 미화원이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환경미화원들은 3인이 한 그룹이 되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환경미화원은 주간작업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시각은 새벽 3시였다. 차 끝에 매달린 그에게 안전막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 사유’라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명목 아래, 사회는 그의 위험을 침묵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그날 새벽, 죽음이 돌진해 그를 덮쳤다. 지난 8일, 항공사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5년 국내 대형 항공사에 입사했다. 코로나19로 사실상 강제 휴직에 들어가자, 회사에서 지급되는 월 기본금 100여만원으로 생활했다. 중고 상품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야 했고, 원룸에서 생활하며 대출받은 돈의 원리금까지 갚아나가야 했다. “코로나19가 꿈이 많던 아이를 앗아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유족은 안타까움을 전했다. 꽃다운 20대, 그리던 꿈을 찬란하게 피워냈을 그를 앗아간 것은 과연 코로나19였을까. 무급휴직과 유급휴직을 병행한 아시아나항공은 이달부터 무급휴직 확대를 검토 중이다. 저비용 항공사들은 무급휴직 전환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9월 이스타항공은 1700명의 직원 중 600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게 건강을 위협하지만, 사회는 노동자의 목숨을 조인다. 갑자기 먹고 살 방법이 없어져도, 하늘이 무너져내려도, 무심하리만큼 무서운 사회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렇게 소중한 딸이 하늘나라로 갔다. 어른들만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 탯줄이 채 잘리지 않은 핏덩이 아기, 부모의 보살핌이 없었던 어린 아이들은 저항할 힘도 없이 죽음이 드리웠다. 두 엄마는 직접적인 가해자였다. 베이비박스에 눕히지 않아 아이가 추위에 떨게 만들었고, 폭력으로 아이들을 아프게 했고, 위험요소에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몸에 불이 붙게 했다. 하지만 두 엄마를 떠민 건 사회였다. 두 엄마가 홀로 남게 하였고, 모든 책임으로 그들을 눌렀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행하는 그들과 희생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손길도 내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별이 되었고, 두 엄마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회의 어두운 물결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억죄고 죽음으로 이끈다. 어둠의 물결은 강한 사람을 덮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 스며든다. 그들의 비명이 소리 없이 꺼지고, 희미한 빛들은 하나 둘 힘을 잃어 간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밤. 삶을 이어가지 못하고 끝내 연기가 된 사람들, 깊은 어둠 속 고통받는 사람들이 안락한 온기 속에서 축복받았을 하루를 그려본다. 따뜻한 촛불 안에서 아이처럼 행복하게 살았던 그날이 돌아오기를. 그리고 이어지기를. 저 하늘 반짝이는 별들이 마음 놓고 포근했던 기억만 간직하기를. 그리고 기도한다. 어두운 땅을 딛고 있는 별들을 온기로 감싸기 위해, 사회가 뜨겁게 노력하기를. 스며드는 잔인한 어둠에 날카로운 경계를 세우고, 연대와 관심을 모아 연약한 온기를 지켜내기를. 그렇게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기를.
어두운 방, 타고 남은 생일 초에 다시 불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