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긍정적 기대와 관심이 그대로 결과로 나타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 흔히 이 용어를 사용한다.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심리학 용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신화의 주된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글의 전개를 위해 간단한 언급이 필요할 듯하다. 천재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적 여성의 모습을 한 조각상으로 만든다. 조각상을 너무나 완벽히 만든 피그말리온은, 점점 그 조각상을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실제 인간이 되기를 강하게 열망하기 시작한다. “내가 만든 조각상이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이상은, 신화적 특성상, 신이 피그말리온에게 ‘아량’을 베풀면서 실현된다. 

고대에 지어진 허구적 이야기가 오늘날 현대인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대를 넘어 신화와 인간의 심리 현상을 꿰뚫어 연결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고전적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의 꿈과 이상이 현실에서도 재현되기를 바라왔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러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실현했다. 그만큼 인간의 욕망은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그리스 신화가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이렇듯 현대인의 형상을 상징하는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피그말리온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도로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만 있다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라는 현대적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 가운데 스스로 꿈을 이루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왜인지 거리감과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간절함’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조각상이 인간이 된 것은 신의 아량 덕분이지 않을까, 피그말리온처럼 개인이 간절히 바란다고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은 신화의 메시지를 현대에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발생한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신화적 요소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과거 신은 절대적 위치에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그래서 불가능한 문제는 무엇이든 신의 해결을 바라야 했다. 그랬던 신의 존재는 현대로 와서, 절대적이거나 지배적이지 않고 ‘상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신은 개인적 성공, 명예, 부 등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신을 믿듯이, 명예와 부가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생각한다. 신의 현대적 모습이 이와 같다면, 현대적 피그말리온 효과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어도, 신의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현대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상은 결국 그가 간절히 바랐기에 실현된 것이다. 초점은 신이 아닌 피그말리온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렇기에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피그말리온의 효과는 이러한 오해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지가 신을 움직이게 해야지, 신이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도록 둬서는 안 된다. 현대의 피그말리온은 바로 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만, 원하는 바를 주체적으로 추구하고 갈망하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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