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시카고에서 독감이 발견되었다. 당시는 전시 상황이라 전쟁 교전국에서는 크게 이슈화 되지 못했지만, 이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하여 잠잠해지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번지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은 이를 민감하게 보도했는데, 이것 때문에 억울하게도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되었다. (발생지로 이름을 붙이면 미국 독감 혹은 시카고 독감이 되었어야 한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100년 전 전장에서 젊은 병사들은 3일 내외의 짧은 열병 증상을 겪었고 이 때문에 단순한 감기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몸속에는 바이러스가 남아 있었고 전쟁 후 고향에 복귀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행의 속도를 높였다. 이 독감의 전염성은 어떠한 병보다 강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보다 몇 배에 이르렀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라 오스트리아의 한 청년에게도 징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멘티로 알려진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는 1차 대전 징집을 피하기 위해 노력도 했다. 그러나 결혼한 지 3일 만에 결국 참전하게 되었다. 그는 전장에서도 실력을 인정 받아, 군 간부 덕에 교전 현장에 나가지 않고 러시아 군인 포로를 감시하며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쉴레는 임신 6개월이던 아내를 스페인 독감으로 잃고 그 또한 며칠 후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독감 때문이었다. 한편 <절규>(1893)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63-1944)는 선천적으로 허약하게 태어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쇠약했던 화가이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나를 결핵으로 잃고, 그 또한 평생을 우울증과 신경증에 시달렸다. 실제로 뭉크는 자기 주변에 악의에 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언제나 공포를 느끼며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1919년 뭉크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나 이를 이겨내고 8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스페인 독감이 창궐할 당시 20대의 청년 쉴레와 병약했던 50대였던 뭉크는 전염병에 다르게 반응하였다. 다소 괴팍하고 혈기 왕성했던 쉴레가 오늘날로 말하자면 주점과 클럽에서 여색을 즐기며 젊음을 불태웠다거나, 뭉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말마다 예배를 열심히 드렸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역사책에 남은 것은 화가 쉴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고 뭉크는 이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허약함을 인지했던 뭉크는 일상 속에서 위생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매우 조심스럽게 생활했고, 감기에 걸릴까 봐 찬물에는 발도 담그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 19를 스페인 독감과 비교해 본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발견되어 1920년까지,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악명 높은 질병이었다. 우리는 백년 뒤 이와 비슷한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발견된 지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잦아들지 않는다. 확진자 비율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는 수천만 명을 넘었고, 미국, 영국, 브라질,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아직도 수만 명씩 병에 걸리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소식으로 연일 혼란스러웠던 봄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면서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끝나갈 무렵,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교육 현장도 또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몇 년 더 코로나와 함께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적에 대한 정보도 점차 많이 노출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결국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쟁터 에 우리 모두가 참전 중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손 씻기와 마스크라는 방패뿐이지만,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고의 개인 화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뭉크와 같은 철저한 조심성과 어쩌면 강박적인 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일상적 차원의 철저한 방역과 위생적인 습관의 생활화가 절실한 때이다. 방심하는 순간 이 보이지 않는 적이 언제 또 우리를 잠식할지 모른다. 인류가 그간 수많은 고비를 극복 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의 순간마다 그에 맞게 늘 대비하고 해결책을 찾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 19와 함께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한다. 2020년 봄, 아름다운 교정의 꽃들은 봐 주는 사람 없이 피고 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낙엽이 지면, 올해는 더 쓸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다시 교원대가 미래를 대비하는 예비교사들의 학구열로 가득한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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