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6. 2.

2001년 9월 11일, 나는 미국 뉴욕주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낯선 나라에 첫 발을 내딛은지 약 1 개월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학 학생상담센터에서 인턴과정을 시작한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실습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상담센터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공부하던 대학의 학생상담센터는 학생회관을 가로질러서 가야만 했는데, 그날따라 상담센터로 가는 길에 학생회관 로비의 TV 앞에는 수 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 학생회관 TV에서 스포츠경기 중계가 방송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무심히 지나쳐 상담센터를 향했다. 그러나 이윽고 상담센터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것과 이 나라에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날이 바로 미국 뉴욕 맨하탄의 무역센터빌딩과 국방부 건물인 워싱턴의 펜타곤이 비행기 테러를 당해 약 3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9.11테러 사건이 발생한 날 이었다.

이 사건 이후 모든 수업에서는 물론 학생상담센터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9.11테러와 그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주어졌다. 사실 나는 그 나라의 국민도 아닐뿐더러 그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다른 학생들처럼 한 사람 건너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희생자나 희생자의 가족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시간에 할 말이 없어 난감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재난에 대해 그들이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심리적 외상을 어떻게 접근하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많은 상담자들과 소방관들이 지체 없이 짐을 차에 싣고 뉴욕시를 향해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자원봉사자들이 수없이 밀려들어 현장을 돕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예상할 수 없는 불의의 사고였으나 평소 재난과 사고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잘 갖춰져 있는 국가라면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재난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세월호 사고이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고들이 있었지만 세월호 사고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점, 미리 주의만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인재였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할 때 즈음 뜻하지 않게 발생한 후진국적 사고라는 점에서 어느 사건보다 충격이 컸다. 지금도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물론 사고에서 살아남은 학생들과 그들이 생활하던 학교에 남아 있는 선후배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은 극심한 심리적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와 슬픔을 경험하고 있다. 광범위하게는 안산과 진도 지역사회, 그리고 국민 전체가 외상사건(트라우마)로 인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발생 후 1개월이 훌쩍 지났다. 정부나 검찰, 경찰이 사고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얼마나 잘 할지 모르겠지만, 9.11테러의 주체인 빈 라덴이 사살된 시점이 사건 발생 후 10년 후였음을 감안하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이루어지는 데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다만 우리는 국민으로서 한 치의 오점도 없는 조사와 그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지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유가족과 교사들, 그리고 그 외의 관련자들의 외상에 대한 심리적 치유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 등은 상담 봉사자를 모집하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에 배치하였다. 또 많은 일반인들이 현장에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자발적으로 진도지역을 향했다. 9.11테러에서 목도한 미국의 시민의식에 못지 않게 우리사회도 예상치 못했던 불의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인 힘을 모을 수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에 울먹임을 느낄 정도로 큰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국민 모두가 이런 말도 안되는 참사를 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사고와 관련하여 죄책감,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건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들에 고착되어 있기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할 때이다. 사고와 희생자를 잊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고를 통하여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고 재난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각자가 담당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발적인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사고에 대처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앞으로 보다 성숙한 해결책을 선택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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