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학교는 많은 관심 속에서 새해를 맞았다. 지난해 12월 27일,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이 포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선거교육 공동추진단을 구성했고, 이달 20일부터 충북에서는 ‘학교로 찾아가는 선거법 안내 교육’이 실시된다. 더불어 민주시민교육이 주목받고 있는 지금, 일각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과 선거교육은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 선거교육이 포함된다. 또한 선거교육은 교사의 정치적 의견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교육도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엇인지, 이번 기획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 민주시민의 꽃을 피우는 학교, 서원고를 방문하다
우리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 서 20분 거리에, 시민교육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다. 서원고등학교(이하 ‘서원고’)는 성장과 발전이 무궁무진한 새싹인 학생 들을 도와주는 행복씨앗학교 혁신학교이다. 행복씨앗학교로 서 받는 지원과 민주학교 모델학교 사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서원고는 민주시민교육을 활발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행복씨앗학교 운영의 첫 번째 단계로 서원고는 먼저 교사의 회의 문화를 바꿨다. 전에는 위에서 아래로 결정사항을 전달하는 상명하복의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교사가 모여 의견을 나누고 조별로 발표를 하며 협의한다. 교사가 먼저 민주시민이 되어야 학생들에게 시민교육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원고의 민주시민교육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학생 자치 활동이다. ‘빛깔있는 학급’에서부터 교칙, 1층 로비의 플리마켓, 학생들이 그린 벽화, 학생이 직접 작곡한 종소리까지 학교 구석구석 학생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서원고의 교칙은 학생부 선생님이 아닌 학생회와 일부 학생이 모여 기본 규정이 마련되었다. 그러고 나서 강당에 모든 학생과 선생님이 모여 서로 손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교칙이 완성되었다. 학교 운영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서원고는 교육 3주체인 학생·교사·학부모를 모두 모아 3주체 컨퍼런스와 원탁 토론 회의를 진행했다. 서원고에서는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회뿐만 아니라 동아리 친구들, 진로가 같은 친구들이 모여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예산을 신청하기만 하면 된다. 학급과 행복실에 물품 바구니가 배치되어 있어 재료도 번거롭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 행복씨앗학교의 마스코트인 아름이와 다운이, 희망이도 학생들의 작품이다. 이를 본 미술 동아리 학생들이 학교에 물감을 요청해 그린 벽화도 있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학생들은 운동장 계단에 캠페인 그림을 그렸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학생이 주도적으로 협력하고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도록 학교가 돕는 체계가 형성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그린 아름이, 다운이, 희망이의 벽화이다.
서원고의 빛깔있는 학급 1-2 김정원 담임선생님과의 인터뷰
Q. 1학년 2반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A.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느꼈던 게, 민주시민교육이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를 하는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급훈을 “I’m OK! You’re OK!”, 우리는 모두 옳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행복씨앗학교와 민주 학교 모델학교 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이 원하는 건 생각보다 활동적인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텃밭을 가꾸고, 수확 작물을 팔아서 연탄 봉사를 다녀오고, 함께 클라이밍을 가고 옥천의 지역축제에도 참여했어요. 그리고 공간 프로젝트를 하면서 저희 반 교실에는 턱걸이를 들여놓았어요. 남자아이들만 있는 반인데, 아이들이 힘을 써야 하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제안을 한 거죠. 그리고 옷을 걸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자기들끼리 협의한 다음에 행거를 사고, 또 교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소파를 샀죠. 여기서 디자인 전공하고 싶은 친구가 우리반 분위기에는 검은 가죽소파가 어울리겠다 해서 그걸 샀어요. 굉장히 만족스러워해요. 자기들끼리 쓰는 거라고 실내화를 벗고 눕기로 정하고, 청소시간마다 쓸기 담당 학생이 소파 구석구석 뒤집어가면서 쓸어요. 자기들 이 능동적으로 만든 공간이니까 스스로 책임을 지는 거죠. 만약에 제가 마음대로 사들인 거였으면 할 말이 없었을 것 같아요. 턱걸이도 가벼운 걸 사니까 70kg 이상 나가는 학생이 하면 흔들린 다고 옆에서 잡아줘요. 가벼운 애가 오면 쉬고. 이렇게 작은 사회를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작은 목표이지만, 지금 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학교가 바뀌면 지역사회가 바뀌고 졸업해서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학부모님께 들은 건데, 아이들이 집에 와서 실제로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대요. 저도 아이들이랑 지내면서 진짜 많이 성장했어요.
▲1학년 2반 학생들이 안전하게 턱걸이를 하기 위해 서로 돕고있다.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자, 김양선 선생님과의 인터뷰
Q.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A. 이번에 참정권이 확대되면서 민주시민교육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관련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선관위에서는 자칫 잘못해서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학교가 소란 스러울 수 있다, 이런 두려움과 염려를 지나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참정권이 확대됐는데 오히려 선거와 관련된 교육을 하지 못하는 그런 모순이 발생한 거죠. 청주 MBC에서 선거교육 관련 취재를 하겠다고 해서 이번에 같이 했는데 며칠 전 작가와 통화를 했어요. 고등학생들은 판단력이 미숙해서 교사가 정치적 입장을 내세울 때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 무시하시지 말라고 했죠. 더군다나 최근에는 수업할 때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끌어가는 방식은 안 하잖아요. 토론하고 아이들이 발표하는 식으로 수업을 하는데 여기서 어떤 교사가 애들을 붙잡고 이 정당만 찍어야 된다고 할까요. 학교를 의심하고 언론에서부터 그런 질문을 하니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사나 학교에 대한 태도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교육철학을 가지고 방법을 모색하고 아이들과 교육의 목적을 지향하면서 실현하는 존재로, 주체성을 가진 성인 교사로서 보지 않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선거와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깔려있는 것 같아요.
Q. 최근 선거연령 하향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4월 15일이 총선인데, 3월에 선거교육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선거 목전에 교육을 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걸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미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현장에서 판단력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배워오는 중이에요. 그 결과로 선거권이 주어졌을 때 선택하는 것이지 3월에 잠깐 선거교육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선거연령 하향으로 선거교육이 주목받고 있지만, 선거교육이나 정치교육으로만 지협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민주시민교육차원에서 크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 타협하고 토론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배워가는 그 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이 되어야 하는 거죠.
◇ 우리학교의 시민교육 역량강화사업
초·중등 예비교사가 함께 만드는 시민교육레시피
시민교육 역량강화사업의 일환인 ‘초·중등 예비교사가 함께 만드는 시민교육레시피’는 체험 위주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자들로 하여금 시민성의 구체성과 맥락성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시민역량과 예비교사로서의 시민교육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 시민교육 레시피는 일종의 시민교육 지침서이며, 예비교사들은 학교시민성, 국가시민성, 세계시민성, 디지털시민성을 아우르는 시민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모둠별로 4가지 영역 중 하나를 택해 공동학습 및 협의, 집필을 진행한다.
시민교육레시피 참여자 박새미 학우와의 인터뷰
Q. 시민성의 네 가지 영역 중 본인은 어느 영역을 맡았나요?
A. 디지털 시민성의 디지털 정체성 단원을 맡았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너는 어떤 사람이니? 어떤 성격인 것 같니?”라고 물으면 SNS 속의 나인지, 실제 나인지 되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걸 듣고 처음에 엄청 놀랐어요. 디지털 정체성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속 자아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인터넷 속 모습을 완전히 ‘나’로 일치시킬 건지, ‘나’의 일부로 볼 건지를 얘기해보려고 했어요.
Q. 본인 혹은 본인이 참여한 조는 어떤 과정을 통해 레시피북을 완성하였나요?
A. 레시피북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있지만, 쉽게 말해서 앞으로 시민교육 관련 사업에 쓰일 기초 교재였어요. 그래서 교과서 구성하듯 학습목표가 있었고, 그에 맞춰서 2차시 활동을 짰어요. 교재를 얼추 완성하면 발표회를 하는데, 그곳에서 나온 피드백을 반영해서 열심히 교과서를 썼죠.
Q. 시민교육 활성화에 이번 시민교육레시피 사업이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직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떤 도움이냐고 물으면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를 포함해서 시민교육레시피에 참여하신 열여섯 분들이 교사가 되면 그때서야 드러날 것 같아요. 교사가 갖는 파급력을 생각하면, 예비교사를 대상으로 시민교육을 제시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시민교육레시피에 참여한 학생들이 만든 교과서의 모습이다.
시민교육 역량강화사업 단장 김국현 교수와의 인터뷰
Q. 이번 선거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2018년 충북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면서 강조했던 게 학교 시민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서울교육청에서는 교복 입은 시민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싫더라고요. 그 관점의 전제에는 학교 교육은 미래 시민으로서의 삶을 준비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민주시민교육에서 천부인권처럼 우리는 이미 시민입니다. 민주시민교육이 사실 민주당을 위한 정치 전략이라는 관점에서의 우려는 있죠. 그렇더라도 학교 시민의 개념에서 보면 이번 선거법 개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학교 시민으로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어요.
Q. 시민교육역량강화사업은 2020년에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나요? A. 학생 중심의 사업으로 시민교육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각자 자신들만의 프로젝트를 준비해오면 사업으로 구현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각자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타당성을 검토해 선정된 프로그램은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겠죠. 우선 흥미로워야 해요. 실제 현실의 문제도 직접 다루고. 특히 지역 사회와도 연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업은 그게 좀 부족했죠.
Q. 우리학교의 민주시민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A.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사업으로 이번에 ‘학교 민주주의 살리기’라는 교양을 열었어요. 강의계획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부러 모든 강의 주제와 방식을 학생들과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되어있습니다. 협의를 통해 지역사회 현장 실습을 나가서 참여 관찰도 하고요. 이 강의 개설의 출발점은 우리학교에 학생회가 6년째 구성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는 총장 선거에서의 대표성 문제에요. 학생, 교직원 몇십 명보다도 교수 8명의 힘이 더 큰데 그렇게 뽑힌 총장을 교직원들이 존중할 수 있을까요? 학생회도 구성이 안된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싶습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시민 사회적인 참여가 중요한데, 우리학교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