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14. 05. 18.

  A~D, F학점으로 이뤄지는 현행 대학의 평가체제는 학생들 간 상대적 비교를 통해 이뤄지는 상대평가다. 전두환 정권이 상대평가를 실시한 이래로 모든 대학의 평가체제는 상대평가를 기본으로 하며, 우리학교 역시 개교 이래로 상대평가를 이용해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해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상대평가는 정치적인 이유에 그 연원이 있다. 1978년 부마항쟁 당시 학생들이 군부독재에 반대하여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전두환이 실시한 것이 상대평가다. 상대평가를 이용해 성적평가를 엄격히 한다면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기저에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상대평가는 그 시작도 학문적 성취를 독려하기 위함이 아니거니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발생한 속도와 경쟁 이데올로기 속에서 근래에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 등 기현상마저 파생됐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알리미’ 홈페이지에 공시한 전국 4년제 대학의 ‘2013학년도 졸없애의 졸업성적 분포 비율’에 따르면, 학점이 80점(B학점) 이상인 학생이 전체의 91.13%이며, 90점(A학점) 이상은 36.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 대학의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각함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학점 인플레 현상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기저에는 경제 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교수가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주기 어려워한다. 아울러 학생들은 교수에게 취업을 빌미로 좋은 점수를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학생들이 강좌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해당 강좌의 교수가 학점을 잘 주는가의 여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교양강좌를 담당하는 교수는 학생들에게 점수를 잘 주지 않으면 폐강위기에 처하기 쉽고, 시간강사 역시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학점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전공과목이라고 다르랴. 오히려 전공과목의 경우에 교수들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논리에서 파생된 2000년대 이후의 정책은 대학교육과 취업과의 유착을 심화했고, 결과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낮췄으며 학점 인플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학은 취업을 이유로 학점포기제, 재수강, 드롭제도, 수강을 철회한 기록을 삭제해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을 펼쳐 학점 인플레에 일조했다. 결국 대학은 학사관리에 있어 스스로 불신의 늪에 빠지고 말았으며, 모순적이게도 기업은 학점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학점 인플레는 사회 여러 부분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우선 대학의 각 강좌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낮아지면서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이 부실해질 수 있다. 이는 대학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마저 저하시킬 수 있다.
  어느 평가방식이라고 문제가 없으랴. 하지만 학점 인플레를 차치하더라도 대학에서 평가방식으로서의 상대평가는 문제가 많다. 근본적으로 상대평가는 개인의 성적이 외부요인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심하다. 예를 들면, B학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학생이 그 주위 사람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즉, 진정한 A학점과 (외부요인에 의해) 부풀려진 A학점 사이의 차별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위권의 압축현상으로 개인에게 불공평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상대평가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 근원이 정치적인 것이다. 또한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상대평가를 이용하고 있는 대학은 결국 학생들의 경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그 경쟁을 통해 학생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경쟁 시스템에서 학생들은 학문적 성취가 아닌 학점에만 매달리게 되고, 서로를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치부하기도 한다. 현재 대학교육의 초점은 취업에 맞춰져있으며, 대학의 본질이 협력이 아닌 경쟁이 된 것이 개탄스럽다.
  교육이 경제 담론 속에서 점수와 경쟁, 취업만을 좇은 결과, 교육은 궁극적으로 그 본연의 의미를 퇴색했다. 대학의 본질은 학문적 성취의 달성이다. 또한 학문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수양과 인격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질적 수준 저하는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상황이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신성한 학문의 중심지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나 다름없게 됐다. 특히나 1997년 IMF 이후로 대졸자 구직난이 심화되면서, 21세기 현재 대학의 위상은 거의 직업 훈련소 내지 직업인 양성소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버젓이 취업 중심, 취업률 100% 내지 공무원 사관학교 따위의 광고 슬로건이 내걸리는 것을 보노라면 대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산학협력의 필요성과 그 효용성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이 사회에서 과연 취업과 경쟁의 장으로만 작용하는 가에 대해서는 자성이 필요하다. 대학을 경쟁의 장으로 전락시킨 사회의 현실도 통탄할 노릇이지만, 각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로 취업학원으로의 모습만을 보이는 것도 잘못이다.
  취업률 등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좆는 행위는 근시안적이며, 대학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게 만든다. 또한 이러한 개념에서 상대평가 등 경쟁행위는 소모적이며 건설적이지 못하다. 대학들은 각기 설립 목적에 맞춰 지금껏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는가? 대학은 과연 학문적 성지로써 한국 교육의,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생산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취업률이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각 대학은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눈에 보이는 지표(점수)만을 고려한 채로 각자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본질을 중요히 여겨야 한다. 교육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속도와 효율성만이 답은 아니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